'지옥2' 최고 임팩트 문근영, '국민 여동생'의 근사한 배반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4.10.28 13:00
'지옥2' 문근영 / 사진=넷플릭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배우 문근영을 대부분 기억한다. ‘가을 동화’의 은서, ‘명성황후’의 자영, ‘장화, 홍련’의 수연 등 커다란 눈망울에 청초한 분위기를 지녔던 어여쁜 외모의 아역은 단숨에 대중 눈에 들었고 사랑받았다. 총기 있는 얼굴만큼이나 재능도 넘쳤다. 그는 만 17살에 대종상에서 신인여우상('어린 신부')을 받았고, 이듬해에 여우주연상 후보('댄서의 순정')에 올랐다. 만 21세에는 연기 대상(‘바람의 화원’)을 받았다. 당시 ‘국민 여동생’이라 불렸던 문근영은 작품 안에서 커가는 모습만으로도 대중을 흐뭇하게 하는 배우였다.


그런데 25년이 지나 서른일곱 살이 된 넷플릭스 ‘지옥2’(연출 연상호, 각본 연상호 최규석) 속 문근영은 우리가 그를 잘 알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눈 마주칠까 무서운 그로테스크한 화장에 광기와 흥분이 서린 고양된 목소리, 광신도의 포악하고 기괴함을 진하게 끌어안은 채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이 배우의 ‘지옥2’에서 모습은, 낯설다 못해 충격적으로 다가와 이 작품에 찌르르한 반전을 선사한다. 연상호 감독이 “‘지옥2’ 문근영은 마치 조커 카드 같다”라고 미리 귀띔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옥2' 문근영 / 사진=넷플릭스


‘지옥2’에서 오지원(문근영)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종교에 깊게 빠지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지원은 온화하고 다정했던 아내이자, 자신이 맡은 유치원 반 이름처럼 ‘햇살’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봤던 선생님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지옥행 고지가 일어나 죽음의 사자들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 기현상을 이용해 교리를 설파하는 새진리회 1대 의장 정진수(김성철)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원은 정진수의 말에 집착적으로 빠져들다가, 믿음이 심화하고 뒤틀려 화살촉의 일원이 된다. (화살촉은 새진리회의 하위 조직에 불과했으나, 정진수의 부재와 고지받은 신생아의 생존으로 인해 반발이 벌어져 분리된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 집착하게 된 지원은 시연에 동참했다가 팔 한쪽을 잃지만, 대신 화살촉 핵심 인물이 된다.



교단에 오른 지원이 “당신은 왜 지옥에 가나요? 당신의 죄가 무엇이길래?”라며 포효하는 장면에선 절로 “미쳤다”라는 외마디가 터져 나온다. 지원이라는 인물의 광기도 미쳤고, 문근영의 연기도 미쳤다. 근본적으로는 이 미친 인물의 광기를 오롯하게 끌어안은 문근영의 연기력이 미쳤다. ‘지옥2’는 모두가 미쳐버린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들을 조명하는 작품이지만, 문근영이 등장할 때만큼은 미친 사람에게로 주객을 전도시킨다.


'지옥2' 문근영 / 사진=넷플릭스


그것은 광신도의 말투를 능란하게 구사한다거나 분장을 괴기하게 해서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이를테면 타고난 그릇 같은 것이다. 문근영은 극 중 남편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농담처럼 “그런 사람은 시연 안 받나 몰라”라고 말하는 순간, 텅 비었던 두 눈에 애통과 분개를 순식간에 실어넣는 기막힌 기복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타고난 연기 그릇이다.


그래서 문근영은 알았지만 몰랐고, 몰랐지만 알게 된 것들로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 이후 ‘지옥2’로 새로운 방점을 찍는다. 연기 잘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으로 흉포한 얼굴까지 가능할 줄은 몰랐고, 이렇게 기괴한 얼굴이 있는 줄 몰랐지만 그만큼 스펙트럼 넓은 배우라는 것을 알게 했다. 생각해 보면 문근영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은조(‘신데렐라 언니’)와 마주했을 때, 뼈 때리는 말의 날카로움으로 이복동생 효선(서우)뿐만 아니라 수많은 청춘을 눈물 쏟게 했다. 진즉 예사롭지 않았지만 ‘국민 여동생’ 이미지에 잡아먹혀 애매한 경계에 갇히기도 했던 이 배우는, 세월이 선물한 유연함으로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역이용해 그 반전으로 자신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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