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챔피언의 최후…이마엔 피칠갑, 분뇨 위 몸부림치다 떠났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10.26 09:00

쓸모없어진 말들의 애달픈 결말…8마리 사체와 함께 '똥밭'에서 힘겹게 연명
공주 불법 말 축사에서 10마리 폐사, 계속 죽는데 공주시 동물보호팀 "동물 학대 아니다"
이런 산업 구조 만든 '마사회' 책임 지적…"경주마 생산 너무 많은 게 문제, 생산량 조여야"

망아지 때부터 '경쟁하고 달리는 말'로 훈련 받고 키워진 경주마 '질주'. 2년 만에 퇴사한 뒤 이리저리 전전하며 쓸모를 다하다, 불과 14살에 치우지도 않은 똥더미 위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말의 평균 수명은 25~30살. 아직 살 날이 10년 이상 남은 것이다./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갈색 말의 몸은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콘크리트 맨바닥을 혀로 반복해서 핥고 있었다. 털은 윤기가 사라진 채 축 늘어졌고, 눈은 초점이 나가 있었다. 주위는 치우지 않아 푹푹 빠지는 말똥으로 가득했다. 충남 공주시에서 적발된 불법 말 농장에서 마주한 모습이 이랬다.
그 갈색 말 이름은 '질주(가명)'. 2010년에 태어난 14살 경주마이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경마장을 달렸다. 고작 2년이었다. 최대 70km가 넘는 속도를 자랑하기도 했다. 1등도 몇 번 했고, 대상 경주까지 포함해 총상금 2억원 넘게 벌고 은퇴했다. 위풍당당하게 갈기를 휘날리며 시원히 달리는 옛날 영상도 유튜브에서 봤다.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경주마 '질주'의 모습. 선수 수명이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았다./사진=한국마사회 홈페이지
경주마 은퇴 후 '질주'의 이력을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서 조회해봤다. 2016년 여름부터 '승용마(승마장에서 타는 말)'로 변경됐고, 그 후엔 텅 비어 있었다. 말 주인 이름도 현재와 달랐고, 있는 곳도 전북 승마장으로 잘못 기재돼 있었다. 기록된 이력이 아주 엉망이었다. 여기저기를 다니며 8년을 보냈을 텐데, 그 삶이 뭐였을지 알 수도 없었다.

'질주'는 짐작했을까. 한 살에 경매돼 고작 2년을 내달린, 자신의 결승선이 똥더미 위일 거란 걸. 다릴 다쳐 주저앉고, 일어나려 애쓰다 벽에 부딪혀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고. 밤새 몸부림치다 이윽고 차게 굳을 거란 걸.
인간 기준에서 이젠 쓸모없어진 퇴역마 '질주'의 씁쓸한 마지막 모습이 그랬다.

그리고 '질주'는 해당 불법 말 농장에서 죽은(눈으로 확인된 걸로만), 아홉 번째 말이었다.



"말 사체들이 굴러다녀"…퇴역마 8마리가 죽어 있었다


"하아, 내리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는데요."

가을비가 퍼붓던 날 아침. 도착한 공주 불법 말 농장에 들어설 때, 김정현 한국말복지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말 이력을 확인할 리더기를 손에 쥔 채였다. 동행한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김정현 소장의 친한 동생 서경씨(가명)와 차에서 함께 내렸다.

대부분 삐쩍 마른 말들이 바닥에 코를 박듯, 건초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갈비뼈가 선명하게 다 드러난 말들도 있었다. '퇴역마'일 거라고 했다. 한때는 경마장에서 달렸거나, 승마장에서 사람이 탔거나.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여러 이유로 쓸모없어졌다며, 종착지 가까이 흘러왔을 말들.
처음 말들을 구조하러 온 사람. 공주에 아예 숙식하며 돌보던, 김세현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다가와 인사를 나눴다. 김세현 대표는 말들이 먹는 건초가 모자란지 살피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리 말했다.

"23마리 말 중에서 8마리는 사체였어요. 여기도 죽은 말이었고, 말 뼈들이 아직도 있고요. 마주(말 주인)가 있는데, 그런지 몇 년 됐다고 하더라고요. 남은 말 15마리도 갈비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어요. 끔찍했죠. 너무 배고프니까 똥까지 먹더라고요. 저희 오고 며칠간 매일 와서 밥을 줬거든요. 저것 보세요. 애들이 하루 종일 먹어요."
아비규환. 산 말과 죽은 말이 뒤섞인 채, 서서히 죽어갔을 현장을 상상했다. 힘없어 얼굴을 문에 겨우 받치고 있던 말도 있었다고. 어렵게 확인할 것도 없이 치우지 않은 똥 더미 위에 어디에나 있던 말들. 여길 처음 발견해 제보한, 공주 유기동물보호소 '제니하우스'의 김채원 소장이 이리 말했다.
"제가 버려진 개.고양이 100마리를 돌보는데 돈이 없잖아요. 대출받으러 은행들 돌아다니는데, 앉아 있던 아저씨 세 명에게 여기 얘길 들었어요. '근데 저기 말 농장 알아요? 말 사체도 안 치우고 난리예요' 그러는 거예요. 찾아서 가보니까 운동장에 말 사체가 널려 있고…너무 놀랐지요."



멀쩡히 살아 있는 말이 '폐사'라고…이력 관리 엉망



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김정현 소장이 분주히 움직였다. 치워지지 않은 말똥밭 속으로 발을 푹푹 집어넣었다. 여전히 굶주린 말들에게 건초를 주고, 허겁지겁 먹는 사이 목 부분에 리더기를 대었다. '삑' 하고 내장된 마이크로칩을 확인하는 소리가 났다.

"21살, 설탕이(가명)고요. 얘는 경주마인 것 같아요. 너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처음엔 예쁨 받고 비싸게 왔을텐데…."
29살, 23살, 19살, 17살. 심지어는 고작 6살, 5살의 말까지. 어떤 말은 퇴역 경주마였고, 또 다른 말은 승용마였다. 이력 관리가 얼마나 엉망인지, 현재 마주 이름으로 나온 말이, 16마리 중 한 마리밖에 일치하지 않았다. 멀쩡히 살아 있는데 '폐사'로 뜨기도 했다. 김성호 교수가 설명했다.

"경주마는 이력제가 다 돼 있고, 마이크로칩이 내장돼 있어요. 근데 이렇게 관리가 안 돼요. 말이 쓸모없어지면 돌고 돌잖아요. 레저용으로 갔다가, 마차 끌다가, 농장 갔다가, 결국엔 도축되기도 하고요. 이력제 확실하게 하고, 추적.감시만 잘해도 달라질 거예요."
말 안에 마이크로칩이 대부분 내장돼 있는데, 문제는 변경된 이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예컨대, 승마장에서 다른 승마장으로 갈 때, 바뀐 게 업데이트되지 않는단 거였다. 서경씨는 "1년에 두 번 접종하는데, 말 수의사들이 한국마사회에 제출할 때 전산에 제대로 올리기만 해도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아하고 도도하던 말이 1년 만에…충혈된 눈이 애달팠다


퇴역마들을 이리 데리고 온 이유는 대체 뭘까. 마주가 불법 점유한 땅의 주인 측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랬다.

"어차피 (퇴역마들) 처리하려면 돈 드니까요. 이런 말들을 거의 공짜로 가져오다시피 해서 도축해서 또 벌고. 운 좋아서 상태가 괜찮으면 200~500만원에 팔고요. (살아 있는 말들은) 지역 축제를 뛰면 말 한 마리에 얼마씩 받는대요. 화물차 같은 거에 말 싣고 와서, 똑바로 서 있지 못 하면 죽여야 하니까. (도살할 때) 말이 막 발버둥 치는 소리도 들었고요."

실제 마주가 쓴 글을 찾다가, 이리 적어 올린 걸 봤다. 승마장에서 안 쓰는 말을 처리해주겠다고.
김정현 소장은 최근 승마와 경마쪽 모두 어려워지며 생긴 현상이라 했다. 말을 유지하는 기본 비용, 건초, 베딩, 수의사 등. 승마장이 감당이 안 될 무렵 '안락사를 잘 시켜주겠다'며 퇴역마들을 데려왔을 거라고. 심지어는 돈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아마 마주들도, 내가 말들을 보낸 곳이 이런 몰골로 굶겨 죽이는 데인줄은 모를 거예요. 처리 방법은 없고 어려우니까. 대부분 힘든 광경을 마주하기 힘들어하고 피하잖아요. 잘해주겠지, 난 모르겠다, 그런 거지요."

어쩌면 말산업이 가장 외면하고 싶은 '하수구' 같은 역할을 자처해온 곳. 이처럼 보내졌을 때 퇴역마의 전후가 어떤지 알려줄 말이 여기 공주 불법 말 농장에 있었다.
미국에서 수입돼 승용마로 쓰였던 말 '환희(가명). 불과 8년 전 글에서만 해도 정말 멋지고 빠르다며, 자랑스레 내보였던 말. 김정현 소장이 지난해 승마장에서 찍은 사진(왼쪽)만 봐도 상태가 좋았는데, 공주 불법 말 농장(오른쪽)에 온 뒤 급격히 나빠졌다. 전후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고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우연히 발견한 승용마 '환희(가명)'였다. 김정현 소장이 지난해 여름 승마장에서 찍은 환희의 사진은 위풍당당하고 털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아하고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사랑받는단 걸 아는 것 같았다던 말. 당근으로 된 인형도 달고 있었단다.

그러나 여기서 마주한 환희에게서, 그런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왼쪽 눈은 잔뜩 충혈돼 있었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고갤 떨구고 있었다. 자기가 처하게 된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듯. 그게 애달팠다.



8마리 폐사에, 2마리 또 죽었는데도…공주시청 동물보호팀장 "동물학대 아냐"


현장에서 매일 돌보던 김세현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와 김채원 제니하우스 소장의 노력. 여기에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환경 단체가 모인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의 대책 촉구. 여기에 말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땅 주인 측의 도움으로, 말들의 소유권을 가까스로 마주에게서 뺏었다.
해당 마주는 2년 전에도, 부여의 축사에 말 4마리를 방치한 인물이었다. 그중 2마리는 사망했다. 사회에서 쓰임이 다한 말 두 마리. 동물자유연대는 그들에게 도담이, 별밤이란 이름을 붙여 구조해주었다. 짧지만 태어나 처음,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간을 누리다 떠났다.
이 같은 이력에, 현장에서 발견된 8마리의 말 사체. 실제 도살했다는 증언. 말똥이 가득 쌓인 방치된 환경. 갈비뼈가 다 보이는 말의 모습. 바닥에 굴러다니던 말의 뼈. 며칠 새 이어서 숨진 2마리의 말까지. 퇴역마의 말로와 말산업의 불편한 민낯의 집합체 같던 공주 불법 말 농장.
이를 관할 지자체인 공주시청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담당 지자체가 동물학대를 판단해 격리할 권한이 있기에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그러나 공주시 농업기술센터 동물보호팀장은 '동물학대'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 판단한 이유를 묻자 이리 답했다.

"학대라고 하면은, 학대 증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말들이 야위고 폐사가 됐다고 해서 동물보호단체에서 학대라고 주장하시는데요. 말들이 어떤 상태로 농장에 왔는지 저희가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학대다, 아니다, 단정 짓기는 어렵더라고요."

이를 두고 김성호 교수는, 지난해 개 1200마리가 사체로 발견된 양평군 사건과 비교하며 비판했다. 번식장 등 '잉여 동물'을 처리하는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당시 지자체의 관리 감독 부실 역시 비판받았었다. 당시 가해자인 A씨에겐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양평 때는, 경찰 동원해 폴리스 라인 쳐서 접근 금지하고, 검역관들 와서 수거했는데요. 공주시는 그동안 봐 온 지자체 중에서도 특히 방어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이게 지자체 책임이란 걸 인지를 못 하는 것 같고요. 동물학대로 지자체에서 인정하면 지원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매년 대책 없이 쏟아지는 1000마리 넘는 퇴역마…"말 과잉 생산이 근본 문제"


"경마 산업에서 별다른 대책 없이 매년 1000마리 이상 발생하는 퇴역마. 승마장에서 쓸모를 다한 말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이들은 끝없이 쏟아졌고 처리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마주는,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산업 종사자였을 뿐이다. 이번 사건의 화살은, 악행을 저지른 개인을 허용한 시스템을 향해야 한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 팀장의 말이 그랬다. 그 시스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주체. 그 중심에 한국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있다.

퇴역마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는 뭘까. 김정현 소장이 이를 선명하게 설명해주었다.
한 해 생산되는 경주마가 약 1500 마리. 경주마로서 달리는 기간이 평균 2~3년. 홍콩(평균 7~8년)과 비교하면 턱없이 짧단다. 엘리트 체육과 비슷하다고 했다. 20대에도 노장 취급 받고, 은퇴하면 몸 곳곳이 다 아픈.

그리 짧게 경마장에서 뛰고. 그 결과, 1년에 경주마 1500마리 정도가 '경주 부적합' 판정을 받고 쏟아진단다. 소수는 '휴양 목장' 같은 곳에서 여생을 잘 살지만,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퇴역마들이 승용마로 넘어가기도 하고(전체 약 31%, 2021년 기준), 꽃마차도 끌고, 그러다 헐값에 팔리고 도축되기도 한단다.
경마장 /사진=류승희 기자 grsh15@
말 평균 수명이 25~30살. 경주마로 빠르게는 5살에 퇴역하기도 하는 상황. 삶의 여정이 20년 이상 남았으니 잘 보내야 하는데, 마무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그 근본 원인을 이리 본다고 했다.

"생산이 과잉되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말들이 나오는 게 문제에요. 이 말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줄 시간과 돈을 들이기엔 말들이 너무 많은 거죠. 갈 곳이 없어요. 경주마들 가격이 싸니까, 승용마로 흘러오는 거예요. 도축되거나 열악한 승마장에 팔려 가면 값싼 소모품 취급을 당하고요. 이런 산업 구조를 만든 게 마사회니까, 어느 정도 도의적, 경제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한국마사회 '유명무실' 대책 비판…"승마장 내 말 생추어리 만들어 지원해야"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한국농어촌공사·한국마사회 등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에 지난해 12월, 한국마사회가 말 등록 의무화와 말산업육성법 안에 말 복지 조항 마련 등 보고서를 마련했으나, 뚜렷한 개선점이 없다고 동물보호단체들이 비판하고 있다.

관련 법 마련도 난항이다. 조현정 카라 정책기획팀장은 "21대 국회에서 비참한 퇴역마 복지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며 "당시 말 산업계는 개인의 사유재산 처분 권한을 제약한다며 반대했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소극적 자세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김정현 소장이 조사한, 퇴역 경주마 복지 시스템의 해외 사례가 이랬다.
영국은 영국경마협회 기금으로 '퇴역경주마 재훈련단체'를 만들어, 은퇴 경주마가 목장, 승마장, 마주에게 안전히 돌아갈 수 있게 교육하고 훈련한다. 홍콩은 은퇴마가 수의사 건강검진을 거쳐, 향후 어떻게 재사회화 될지 방향을 정해준다고. 일본은 일본중앙경마회를 통해 퇴역경주마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단체와 목장을 지원하고 있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말 생추어리(보호시설)의 모습이 이랬다.
"반려동물로 비유하면, 모든 가정이 생추어리가 되어야 해요. 승마장에서도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경우가 있을 거고요. 승마장 마방이 한 20칸이면, 한 칸에서 두 칸은 생추어리로 만들어 퇴역마를 보호하는 거예요. 마사회가 지원하는 방식으로요. 그냥 밥 먹고 쉬고, 햇볕 쬐고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당근 받아먹게 하고요."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함께 사는 것. 그리 함께하다 하늘나라에 갔을 때 장례를 치르게 해주는 것. 경주마든 승용마든 신나게 내달리다 맞는 결승선이, 적어도 그런 따뜻한 방향이었으면 싶었다.
에필로그(epilogue).

말의 '공감 능력'에 대한 얘길 들었다. 포유류 중에서도 사람만큼 발달한 게 말이란다. 상대방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아는 것 같다고. 서경씨가 들려준 얘기가 이랬다.

"제가 코치했을 때였는데요. 말 주인 분이 차를 주차하면, 그 소릴 듣고 말이 마중을 나오는 거예요. 또 레슨하던 친구들 중에 소심한 애가 있었어요. 승마하다가 정말 쾌활해졌거든요. 잘 놀다가 한 번은 놀라서 아이를 떨어트린 거예요. 근데 그 말이, 애가 떨어진 걸 알고 멈추더니 그쪽으로 가더라고요. 코로 이렇게 건드려요. 괜찮아? 일어나. 이렇게."

김정현 소장이 들려준 말 이야기는 더 뭉클했다.

"포르투갈에서 한국에 온 어떤 말이 있었대요. 그 말을 예뻐하는 마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포르투갈 사람이 그 승마장에 온 거죠. 말도 포르투갈에서 왔는데 신기하다면서, 말에게 포르투갈어를 한 번 해보라고 그랬대요. 근데 말이 그걸 듣더니, 굉장히 감정적으로 동요하며 동향 사람 왔다고 극적으로 반응하더라는 거예요. 그걸 보고 다들 눈물이 났다고 했어요."

패럴림픽 선수가 얼굴 솔질해줄 때만 고개를 내린다던 말. 정말 똑똑한 동물이라 애정이 담긴 터치도 다 알아챈다는 말. 애정 표현으로 서로 입술과 이빨로 살살 긁어준단 말을 듣고 바라본 이들의 모습이 정말 그랬다.

건초 먹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다가와 준 나이 든 말을 보고, 그들의 표현대로 목을 톡톡 쳐주었을 때. 사람의 체온보다 1도쯤 높다는 그 몸이 참 따뜻했다. 오래도록 안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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