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반값 '뚝' 떨어져도 "맛없어서 안 사"…'과일계 에르메스'의 추락[르포]

머니투데이 오석진 기자, 김호빈 기자 | 2024.10.23 13:55

재배 농가 급증, 한달새 가격 34%↓…가격 하락 예상하고 서둘러 대량 출하, 품질 저하로 이어져

23일 오전 9시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사진=김호빈 기자

"물량은 두 배로 늘고 가격도 싸졌는데 매출은 절반 이하입니다."

23일 오전 9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 과일가게를 하는 70대 박모씨는 "샤인머스캣이 잘 안 팔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엔 1kg에 1만5000원이 넘었는데 지금은 훨씬 떨어졌다. 우리는 8000원에 판다"고 밝혔다.

이날 박씨네 가게 가판대에는 샤인머스캣과 사과, 멜론, 토마토와 무화과 등 다양한 청과물이 있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 시선은 사과 등을 향했고 샤인머스캣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40년 넘게 과일을 팔았다는 60대 김모씨도 "샤인머스캣 가격이 폭락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4kg에 4만원대였는데 지금은 2만원대"라면서 "지난해와 비교해 반도 안 팔린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부분 농가가 검정 포도에서 샤인머스캣으로 품종을 바꿔 재배하면서 가격이 싸진 것 같다"며 "기존 포도는 비가 오면 (포도알이) 다 터지는 데 비해 샤인머스캣은 재배하기 쉽다"고 했다.

60대 서모씨는 "지금 2kg짜리 샤인머스캣이 150박스 있는데 다 팔려면 한참 걸린다"며 "적어도 3~4일 안에 팔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샤인머스캣, '네맛도 내맛도' 아냐"


23일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샤인머스캣. 상인들은 샤인머스캣 물량은 많아졌으나 매출이 이전같지 않다고 밝혔다. /사진=김호빈 기자

소비자들은 '과일계 에르메스(명품)'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샤인머스캣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사과 두 봉지를 구매한 60대 전모씨 "요즘 샤인머스캣은 알이 작고 맛도 옛날보다 약해졌다"라고 말했다.


사과 한 봉지로 장보기를 끝낸 60대 최모씨도 "샤인머스캣 맛이 '네맛도 내맛도' 아니다"라며 "경상도 말로 닝닝하다(밍밍하다)는 말이 있는데 딱 맞는 말이다"라고 했다. 이어 "원래 샤인머스캣을 좋아했는데 이제 맛이 없으니까 싸도 안 사게 된다"고 했다.



재배 농가 급증, 한달새 가격 34%↓…급히 수확해 당도↓




지난 7월부터 하락세를 보이는 샤인머스캣 가격. /사진제공=농산물유통정보

실제 샤인머스캣 광풍에 재배 농가가 급증하면서 수요보다 생산량이 늘고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샤인머스캣 평균 소매가격은 2kg에 1만3622원으로 지난달보다 34.27% 하락했다. 전년 동기 대비 29%, 평년과 비교해선 49.44% 떨어졌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수요 대비 공급이 많으면 가격 하락은 당연한 것"이라며 "소비자 수요가 샤인머스캣에서 다른 포도로 넘어가려는 트렌드가 보인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추석이 끝나고 가격 하락을 예상한 생산자들이 물량을 대량으로 출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때 충분히 영글기 전 수확된 제품이 시중에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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