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헐렁한 법, 적용도 지지부진…'경사로' 대법 간 이유

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이찬종 기자, 정진솔 기자, 송정현 기자 | 2024.10.23 08:30

[MT리포트]대법원으로 간 '한뼘의 장벽' (下)

편집자주 | 누군가엔 한뼘에 불과한 문턱이 어떤 이에겐 매순간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다. 흉내만 낸 경사로에 쩔쩔매는 유아차와 노인, 휠체어를 보면서 우린 어느 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대법원이 이 문제를 두고 3년만에 공개변론을 연다.



편의점 바로 앞이 차도인데 경사로 설치?…점주들 "사고 나면 어쩌나"


/사진=뉴스1

"경사로를 설치하려면 한 달 수익을 모두 쏟아부어야겠지요. 부담은 되겠지만 소상공인 입장에서 계속 영업하려면 어쩌겠어요."

지난 20일 정오께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점장 A씨(50대·남)는 '편의점 앞 경사로 설치가 전면 의무화되면 따를 것인지 묻는 말에 "폐업도, 시위도 할 생각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소수를 위해 감내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이 주변 땅값이 평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데 경사로 하나 들어서는 땅값 생각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평소 편의점에 장애인이 방문하면 버선발로 마중 나간다고 했다. A씨는 "편의점 앞에 휠체어가 서면 뛰어나가 돈이나 카드를 받고 가게에 들어와 상품을 직접 가져다드린다"며 "휠체어를 안에 들이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장애인이 편의점을 방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그가 운영하는 편의점을 휠체어를 타고 찾는 손님은 외국인 관광객 뿐이다.

A씨는 "편의점이라는 게 걷다가 생각나면 잠깐 들어오는 업종이다 보니 장애인분들이 애용하는 시설이 아니다"라며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물품은 요즘 인터넷으로 다 배송이 되니 방문할 일이 없다"고 했다.

A씨는 오히려 경사로가 설치되면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편의점이 보통 차도 바로 앞에 접해 있어서 경사로가 설치된다면 더 위험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며 "나라에서 지정한 각도로 경사로를 만들 공간이 안 나와서 가파른 각도의 경사로를 만들면 내려갈 때 미끄러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만약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차도로 떨어진다"며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했다.

2022년 관련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편의점 운영사들은 신규 매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CU는 2022년부터 지난 8월까지 50㎡ 이상의 매장 790개에 △경사로 492개 △내부벨 334개 △외부벨 416개를 설치했다. 같은 기간 세븐일레븐은 신규 매장 667곳에경사로를 설치했다. 설치된 매장은 모두 면적이 50㎡ 이상이었다. GS25는 총 217개 매장에 △경사로 59개 △도움벨 99개 △휠체어 진입로(슬로프) 59개를 설치했다. 이 중 50㎡ 미만의 소규모 매장 21곳도 포함됐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아직 '후진국'…"인센티브 방식도 고려해야"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경기남부경찰청은 '2024 인권 사진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 88점 가운데 수상작 17점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진은 '그러다 집까지 쫓아가겠네!'라는 제목의 장려상 수상작이다. 여기에는 폭우에 따른 하천 범람으로 발생한 실종자를 수색하던 경찰관이 진흙탕에 갇혀 움직이지 못 하는 장애인을 발견하고, 직접 전동 휠체어를 들어 빼내는 등 적극적으로 돕는 장면이 담겼다. 사진은 본문과 무관./사진=경기남부경찰청

#네덜란드에 사는 대학생 보윈 드 위(22·여)는 휠체어를 타고 홀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보윈은 출발 1시간 전 미리 네덜란드의 주요 여객 철도청인 NS(네덜란드 스포르웨겐)어플이 제공하는 무료 승하차 도우미 서비스를 예약했다. 플랫폼에 도착하니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가 활짝 웃으며 보윈을 맞이했다. 도우미는 이동식 경사로를 깔고 휠체어를 밀어 지정석까지 보윈을 안전히 데리고 갔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모모(60대·가명)는 인근 전철역을 주로 이용한다. 그는 지하철을 탈 때 심심찮게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노인을 보곤 한다. 그들은 지하철을 타기 전 역무원을 불러 목적지를 미리 알린다. 역무원은 발판을 들고나와 기다리다가 지하철이 들어오면 이를 깔아 길을 만들어 준다. 지하철이 출발하면 목적지에 있는 다른 역무원에게 연락해 발판을 들고 대기하게 한다.

휠체어와 유모차를 이용하는 이들이 직접 소송을 낸 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제 도입 속도가 미진한 상황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은 복지 수준이 부족하다"며 "장애인 접근성이 향상되면 그 혜택은 노인, 유모차 이용자 등에게로도 퍼진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에선 '바닥 면적 50㎡(약 15평) 이상 점포'의 경우 장애인 편의시설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 결과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화 대상인 건물은 19만0991개에 불과했다. 전체건물 수는 739만1084개의 2.6%다.

조한진 대구대 대학원 장애학과 교수는 "한국은 장애인 이동권에 관련한 법률을 공공기관이나 큰 시설부터 적용하고 2~3단계쯤에나 소규모 가게까지 대상이 넓어지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게다가 3단계도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일 때만 적용되다 보니 사실상 면제되는 업장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에 반해 미국 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은 단계적 적용도, 면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은 공공건물을 넘어 상업 건물까지 반드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소규모 건물부터 심지어 199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 법에 따르면 건물에 휠체어 경사로, 자동문, 엘리베이터, 장애인 주차장 등이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시설주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5만 달러(약 5700만원) 이하의 벌금, 누적되면 10만 달러(약 1억1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일본에선 대부분의 신칸센(고속철도), 지하철, 버스는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도록 휠체어 전용 좌석과 경사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역무원이 승하차를 돕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도 앱을 통해 도우미 서비스를 간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사회 인프라를 바꿔나가는 과정"이라며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사회적 감수성이 부족해서 다른 여타 복지 선진국과 복지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 같은 경우에는 의무시설을 갖춰야만 영업 허가를 주는 식으로 강력하게 규제를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시설 규제가 들어가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기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라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영세 자영업자들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면 거기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식이 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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