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국 맞아?…"베트남어로 말해도 척척" 외국인 몰리는 특별한 은행

머니투데이 평택(경기)=김도엽 기자 | 2024.10.23 11:05

[MT리포트]
외국인 260만명, 다문화 금융의 시작 ④
외국인 전용 은행 점포 가보니

편집자주 | 대한민국은 더이상 '한민족 국가'가 아닌 '다인종·다문화 국가'다. 체류 외국인이 2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이들을 위한 금융서비스는 아직 걸음마 수준. 외국인을 위한 금융서비스를 점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 내부 모습/사진=김도엽 기자
지난 9월 문을 연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은 고객이 전부 외국인인 외국인 전용 점포다. 주말 아침이면 은행 업무를 보려는 외국인들로 '오픈런'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택시뿐만 아니라 인근 화성시, 아산시, 오산시는 물론 멀리 경북이나 경남에서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평택외국인센터점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일 은행 업무를 볼 시간이 많지 않다.

노병주 하나은행 평택금융센터지점장은 "평일에는 60명 내외, 일요일에는 100명 이상의 손님이 방문하고 있다"며 "태국, 베트남, 미얀마, 네팔 등 아시아 국가와 평택 미군부대가 위치해 미국 국적 손님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점포를 찾은 평일에도 오전 9시 문을 열자마자 파키스탄 국적의 칸 세하르씨(28)가 비자 연장을 위해 은행 잔액 증명서를 받으러 왔다. 한국 생활 8년 차로 호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파키스탄 국적의 칸 씨는 하나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이용 중이다.

칸 씨는 "하나은행은 외국인도 한국 사람과 똑같이 혹은 더 대우해주려는 게 느껴진다"며 "한국 생활 연차가 짧은 친구가 은행 업무가 필요하다고 해서 주말에 직접 평택외국인센터에 데려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 내부에 '외국인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간으로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영감받아 외국인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은행 영업점과 분리되는 셔터가 작동된다/사진=김도엽 기자
칸 씨의 말대로 이날 평택외국인센터에는 혼자 방문한 고객보다 2명 이상 같이 방문한 고객이 많았다. 노 지점장은 평택외국인센터가 '외국인들의 사랑방'으로서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 점포 인테리어도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외국에 나가서 은행 업무를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역으로 체감할 수 있다"며 "외국인 고객들이 적어도 하나은행에서만큼은 금융거래는 물론 쉴 공간으로서 편안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콘셉트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평택외국인센터점의 공간 일부는 외국인 관련 기관에 커뮤니티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나은행 고객이 아니어도 창구 직원에게 신청하면 언제든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은행 영업점과 분리할 수 있어 주말에도 대여가 가능하다.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에서 한 베트남 국적 고객이 베트남어로 말하자 한국어로 번역돼 디스플레이에 표시됐다/사진=김도엽 기자
평택외국인센터는 공간뿐만 아니라 운영 면에서도 외국인 고객의 접근성을 대폭 향상했다. 가장 큰 특징은 38개 국가의 언어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은행 창구에서 외국인 고객이 모국어를 말하면 은행 직원의 태블릿 PC에는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이 나온다. 반대로 직원이 한국어로 답하면 고객의 화면에는 외국어로 자동 번역이 된다.

창구를 찾은 한 베트남 국적의 고객이 "베트남에 5000달러를 보내고 싶다"고 베트남어로 말하자 그대로 한국어로 바뀌어 디스플레이에 표시됐다. 이어 직원이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달라"고 한국어로 말하자 디스플레이에는 이를 베트남어로 표시한 문장이 나타났다.

대기하는 고객이 창구 상담 전 서류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14대의 태블릿 PC도 비치했다. 해당 태블릿 PC에서는 영어·베트남어·러시아어·태국어·캄보디아어·미얀마어 등 6개 국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송금신청서 등 간단한 서류 작성 업무를 지원한다. 이날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도 창구 호출을 기다리면서 태블릿 PC로 각자의 모국어를 선택해 서류를 작성했다.

국내 은행 외국인 근로자 특화점포 현황/그래픽=김지영
이날 평택외국인센터를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은 하나같이 '외국인특화점포'가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태국인 쏨분 씨는 "마치 태국 은행을 방문한 것처럼 통장 개설과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며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친구로부터 소개받고 오산시에서 왔는데 오산에도 외국인 특화 점포가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국내 은행의 전체 외국인 특화점포는 32곳이다. 이중 △하나은행이 16곳을 운영해 절반을 차지하며 이어 △국민은행 8곳 △우리은행 5곳 △전북은행 2곳 △기업은행 1곳 등이다. 대면 채널의 확대 등 외국인 친화 정책을 통해 하나은행은 지난 9월말 기준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올해 신규 외국인 고객 수 중 약 50%를 유치했다.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특화점포는 외국인 비중이 높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포진됐다. 32곳 가운데 13곳이 경기도에 위치한다. 특히 외국인 특화점포가 집중된 지역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다. 단원구의 전체 인구 중 23.6%(3만7562명)가 외국인으로 단원구 내에서만 5곳의 특화점포가 운영된다.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가 위치한 평택시의 전체 등록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7.5%(3만1651명)다.

하나은행은 향후 외국인 고객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특화점포 신설 계획도 검토 중이다. 김은영 하나은행 채널전략부 팀장은 "이번 평택외국인센터는 외국인 특화점포 1호점으로 시작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뜨겁다"며 "향후 점포를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고 여러 제반 사항을 검토해 점포의 위치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밝혔다.

베스트 클릭

  1. 1 속옷 벗기고 손 묶고 "빨리 끝내자"…초등생이 벌인 끔찍한 짓
  2. 2 19층 어린이 층간소음 사과 편지에 18층 할머니가 쓴 답장 '훈훈'
  3. 3 "김민재, 와이프 인스타 언팔"…이혼 소식에 4개월 전 글 '재조명'
  4. 4 "차라리 편의점 알바"…인력난 시달리는 '월 206만원' 요양보호사
  5. 5 졸혼 3년 뒤 "나 암걸렸어, 돌봐줘"…아내는 이혼 결심,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