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김신록, 흐름 안에서 흐름 밖을 보는 배우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 2024.10.22 15:12
/사진=넷플릭스


2021년 넷플릭스 '지옥'으로 강렬한 눈도장을 찍은 배우 김신록은 이후 많은 작품에서 자신만의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분명하게 주류 흐름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흐름을 타고 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김신록의 시선은 그 흐름 밖을 향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연출 김상만, 극본 신철·박찬욱)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적도, 신분 질서도 꺾을 수 없는 굳센 의병 범동 역을 맡은 김신록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당초 범동은 남성 캐릭터였다. 그러나 '지옥'을 보고 김신록에게 매료된 김상만 감독이 범동을 여성 캐릭터로 바꿨다. 그만큼 김신록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는 뜻이다. 김신록은 이러한 관심에 감사를 전하면서도 범동이라는 캐릭터를 젠더 중립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감독님께서 저와 함께하고 싶은데 맞는 캐릭터가 없어 범동을 바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 초고에는 힘을 쓰는 캐릭터였는데 저에게 오면서 그런 부분이 빠지고 도리깨가 들어갔어요. 그 외의 부분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저도 젠더 중립적일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사진=넷플릭스


후반부에 등장하는 범동이라는 인물은 구조적으로 중요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선조를 비롯한 양반에 대한 반감을 가진 범동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저항한다. 다만, 작품에는 범동의 서사가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김신록 역시 캐릭터의 세부적인 서사에 집중하기보다는 구조상의 큰 틀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천영과 종려가 개인의 미시사를 통해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범동, 자령, 선조로 이어지는 권력과 민중의 구도는 개인사가 아닌 구조 자체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범동의 전사에 대해 크게 집착하기보다는 이 대본이 드러내는 대조를 잘 드러내 보려고 했어요."


김신록이 바라본 범동은 사상과 신념보다는 순리에 따른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이러한 범동의 캐릭터 성은 진선규가 연기한 자령을 통해 완성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배우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상과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면 범동은 순리를 따르고 마음에서 말하는 정의를 쫓는다는 점이 멋있었어요. 특히 범동의 멋은 자령의 얼굴을 통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범동이 자네가 맞았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장면이 잘 나와서 범동이 확 이해가 되고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범동이 여성이라는 지점 역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지점과 맞아떨어지며 더 큰 의미를 형성하게 됐다. 김신록은 여성인 범동이 의병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나아가 반란까지 도모하는 상황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인물을 여성으로 바꾸자고 했을 때 저라는 배우를 떠나서 감독님, 작가님 사이에서도 '너무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좋은 선택'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해요. 범동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인데 여성이 바지를 입고 도리깨질을 한다는 점이 당시 사회상에 비춰봤을 대 반체제적이기 때문에 맥락이 맞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사진=넷플릭스


도리깨를 주무기로 하는 범동은 뛰어난 무예 실력을 자랑한다. 김신록은 첫 액션 연기라는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범동만의 액션을 소화해냈다.


"자령(진선규)의 오른팔이 천영(강동원)이라면 범동은 왼팔 같은 인물이잖아요. 이 사람의 행동이나 액션이 믿음직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술 감독님과는 '범동의 액션은 병법을 익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투박하고 거칠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예전부터 액션에 대한 장르를 꿈꿔왔다는 김신록은 '전,란'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나이가 들며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되던 차에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전,란'을 통해 액션 막차를 탄 것 같다는 게 큰 성취였어요. 30대까지는 액션 배우를 하고 싶었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마음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전,란'이 들어왔어요. 이제 또 액션 작품이 들어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란'은 김신록의 첫 액션 작품일 뿐만 아니라 첫 사극이기도 하다. 김신록은 '전,란'에 대해 "많은 첫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라며 첫 사극 연기에 나선 소감도 함께 전했다.


"전,란'은 첫 사극과 첫 액션뿐만 아니라 첫 부산영화제 개막작, 첫 넷플릭스 영화 등 많은 첫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다만, 사극이지만 의병이라는 역할을 통해 전형적인 남자의 복색이나 여자의 복색을 하지 않았어요. 젠더 적으로도 중립적이고 시대적으로도 중립적인 이미지로 사극을 시작하게 돼서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사진=넷플릭스


'지옥'은 김상만 감독에게만 김신록이라는 배우를 각인시킨 것이 아니다. '지옥'을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김신록이라는 배우를 궁금해했고 김신록의 배우 인생은 이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김신록 역시 "꿈같은 시간"이라며 지난 3년을 돌아봤다.


"'지옥'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연극보다 산업의 규모, 관계된 사람이 다르다 보니 다양한 일들과의 접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전이라면 전혀 몰랐을 세계를 경험하는 게 재미있어요. 좋은 뷔페에 가서 처음 보는 음식을 배탈 나지 않게 떠먹어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흘러오다가 저에게 또 다른 첫 경험을 하게 해준 '전,란'을 만나게 됐어요. 어떻게 이런 라인업에 제가 이름을 올리고 무대 인사를 할 수 있겠어요. 정말 평행우주에 와있는 꿈같은 시간이에요."


'전,란'에 이어 오는 25일에는 '지옥'의 새로운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두 작품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김신록은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김신록은 3년 전 온스크린 초청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당시와 비교하며 벅찬 감정을 전하기도 했다.


"흔치 않은 경험이라 정말 축제처럼 다녀왔어요. '전,란'이 개막작이라 관객분들에게 말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3년 전이 떠오르더라고요. '지옥'이 온스크린에 선정돼서 야외무대에 섰는데, 저를 아무도 모르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니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올해는 제가 드레스를 입고 개막작 무대에서고 마이크가 쥐어지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홍보 일정으로 바쁜 와중이지만 김신록은 '언더커버 하이스쿨'과 '당신의 맛' 두 작품의 촬영도 병행하고 있다. 바쁜 일정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김신록은 오히려 연기를 통해 이를 돌파한다고 밝혔다.


"가끔 연습실에서 밀도 있는 시간을 연기와 보내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연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 좋은 해결책이 되는 것 같아요. 번아웃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로 갈래갈래 찢어졌을 때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계획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마음은 과거에 머물러 있고, 몸은 현재에 있을 때 번아웃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연습실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면 몸과 마음과 생각이 다 그곳에 있게 돼요. 일정이 너무 많아 바쁠 때면 오히려 더 연기 생각만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는 게 좋더라고요. 눕더라도 연습실에 눕는 거죠. 어린 시절 시간을 보냈던 게 몸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바닥에 누워서 '오늘 여기서 10시간 있는다'라고 생각하면 안정감이 들어요."


/사진=넷플릭스


주목받기 시작한 건 3~4년이지만 2004년부터 연극 무대에 오른 김신록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김신록은 지난 20년을 버틸 수 있던 이유에 대해 "마음을 따라온 힘"이라고 밝혔다.


"제가 범동이라는 캐릭터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책에서 배운 공맹의 도리가 아니라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깨달은 순리를 좇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20년 동안 걸어와서 '전,란'이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던 이유는 마음을 따라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따라온 힘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김신록이 계획하는 앞으로의 20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0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김신록은 계속해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흐름 안에 있지만 흐름 밖에 무엇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면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다양한 행위자들이 이 산업과 세계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꿔가고 있는데 그런 변화와 계속해서 접점을 만들어가면서 매체와 장르를 불문하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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