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쿠퍼티노'에 안방 내준 LG이노텍...이젠, 헤어질 결심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 2024.10.23 04:11
'쿠퍼티노'. 애플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북 구미의 LG이노텍 사업장, 이 곳에 쿠퍼티노란 이름을 가진 별도의 공간이 있다. 애플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지내는 곳이다.

구미 쿠퍼티노에 상주하는 애플 직원들은 카메라모듈 핵심 공급사인 LG이노텍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게 미션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애플은 LG이노텍의 전체 매출 가운데 80% 가량를 책임진다. LG이노텍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애플로 추정되는 단일 고객사로부터 거둔 매출은 6조8161억원이다. 같은 기간 LG이노텍 전체 매출의 77%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LG이노텍의 애플 매출 비중은 80%였다.

애플 목걸이를 한 직원들이 구미 사업장 곳곳을 쏘다니는데, 문제는 일부 LG이노텍 직원들은 이를 협력이 아닌 '감시'로 여긴다는 점이다.
LG이노텍의 한 엔지니어는 "사사건건 간섭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LG이노텍은 애플에 공급하는 카메라모듈에 사용되는 재료와 관련 부품을 모두 애플이 지정한 곳에서만 구매해 조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의 쿠퍼티노는 '협력'보단 애플과 LG이노텍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드러내는 장소인 셈이다. 애플을 주요 고객사로 둔 다른 기업들 역시 사정이 별반 다르진 않겠지만, 전체 매출의 80% 가량을 애플에 의지하는 LG이노텍에겐 사뭇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LG이노텍의 애플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커져 왔다. 2017년 50%를 넘긴 이후로 매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80%에 다다랐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졌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반대로 특정 고객사로 인해 자사 실적이 좌지우지되는 취약성도 안고 있다. 실제로 애플은 최근 3D센싱모듈 공급처를 중국 폭스콘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LG이노텍은 포트폴리오 다양화로 매출처 다변화를 노린다. 지난해 12월 신임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한 문혁수 LG이노텍 대표가 공식 데뷔 자리인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도체기판과 전장을 미래사업 전략으로 콕 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표는 "전장부품 사업 매출을 현재 2조원에서 향후 5년 내 5조원대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로봇과 UAM, 우주산업 등 신사업에도 진출하겠다고 했다. '단짝'은 언제든 바뀐다. 옛 친구와 소원해지지 않으면서 새 친구를 찾는 고난이도의 숙제를 풀어야 하는 문 대표의 고민이 깊다.

베스트 클릭

  1. 1 [단독]입주 한달 전 둔촌주공 1.2만세대 '날벼락'…준공승인·임시사용승인 모두 '불가'
  2. 2 속옷 벗기고 손 묶고 "빨리 끝내자"…초등생이 벌인 끔찍한 짓
  3. 3 화성 향남~서울 여의도 60분 주파 '신안산선 연장사업' 청신호
  4. 4 "김민재, 와이프 인스타 언팔"…이혼 소식에 4개월 전 글 '재조명'
  5. 5 졸혼 3년 뒤 "나 암걸렸어, 돌봐줘"…아내는 이혼 결심,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