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면 담합"…日 후쿠오카 인기 소면, 국내선 탄생 못했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4.10.23 06:00

日 효고현의 이보노이토 소면...영세업자 협동조합이 '공동판매'
독일, 이탈리아서도 협동조합의 공동판매 활발...대기업과 경쟁의 활로
한국에서 중소기업 공동판매는 '담합'...공정위 "시장경제 훼손"
"중소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 악용? 불가능…방지 장치 만들면 돼"

해외 중소기업 협동조합 공동사업 사례들/그래픽=김다나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면 꼭 사야한다는 필수템(필수, 아이템의 합성어) '이보노이토 소면'은 CJ제일제당처럼 하나의 큰 회사가 만드는 게 아니다. 효고현의 작은 제조업자 400여명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원재료를 공동 구매하고 소면을 뽑은 뒤 공동창고에 보관하고 공동운반하고 공동판매까지 하는 제품이다. 각자도생했다면 크기가 작은 업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을 수 있지만 뭉친 덕에 이들은 600년 전통의 수연(手延·국수를 꼬면서 길이를 늘이는 기법) 방식을 지키고 있다. 일본의 3대 소면 중 생산량 1위로 한해에 158억엔(한화 약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해외에 이런 협업사례는 적지 않다. 일본의 후쿠이현은 전통 날붙이(칼, 낫 등) 제조사 13곳이 제품을 공동 개발·판매한 끝에 대량 생산되는 스테인레스 날붙이와의 경쟁을 이겨냈고 독일은 오덴발트 에너지협동조합이 공동 에너지 공급·건축 사업을 한다. 이탈리아는 영세한 식품 소매업자들이 코나드(Conad) 조합으로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유명 상표회사들과 경쟁한다. 국내에서도 많이 팔리는 사포리 디 포지타노(Sapori di positano) 레몬사탕이 코나드 조합의 작품이다.

한국은 이런 중소기업 협업의 활로가 막혀있다. 제품을 공동 개발하고 생산은 할 수 있지만 공동판매는 제한을 받는다. B2G(정부 대상) 거래를 제외한 B2B(기업간 거래), B2C(기업과 소비자의 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소기업들은 공동개발해 같은 제품을 판매하면서도 가격을 달리하는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일례로 100여 중소 가구 제조사가 모인 한국주택가구협동조합은 싱크대와 붙박이장 공동브랜드인 IBIS(아이비스)를 개발하고 2021년 이사회에서 공동판매를 하기로 의결했지만 담합 제재 가능성에 3년째 추진을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개인에 판매하는 것은 금지하더라도 기업간 거래만큼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의 공동판매가 막힌 근거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있다. 법에서 공동판매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 경우 공정거래법을 적용한다'는 단서 조항이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공정위는 단서조항의 '소비자'를 법의 본래 의도인 개인을 넘어 기업까지로 해석한다. 이런 이유로 기업간 거래까지 막혀버렸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협동조합의 공동판매에 대해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협동조합들의 낮은 시장점유율과 열악한 협상력, 대기업과의 거래 연장 등을 감안하면 "약탈적 가격 책정 등 경쟁저해 행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조합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다면 제재하는 식의 장치로 미연의 담합도 방지할 수 있다는 부연이다.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소비자의 정의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개정을 요구 중이다.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이자는 취지의 법 개정이라 여야간 이견이 적어 지난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까지 통과됐지만 임기 말 정쟁 속에 본회의를 넘지 못했다. 이번 국회 역시 여야가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여야가 각각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해외 중소기업은 뭉쳐서 살지만, 국내에서는 뭉치면 담합"이라며 "생존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의 이익을 고려해 법 개정을 추진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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