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처리는 마진이 너무 안 남아서… 최대한 할인해서 다 판매하려고 해요."
21일 오전 11시20분쯤 서울 중구 '동대문 패션타운'에 위치한 A 여성 의류 전문도매상가. 이곳에서 도매로 옷을 판매하는 최모씨(38)는 가게 안의 가을옷들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최씨 가게에는 외투 안에 입을 수 있는 블라우스와 카디건 등이 진열돼 있었다.
그는 "보통 8월 휴가철부터 추석 이후까지 가을옷을 판매하는 시기"라며 "올해 가을은 짧을 것 같다고 해서 가을옷 제작 수량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는데도 재고가 남는다"고 밝혔다.
지난달까지 이어진 무더위가 끝나자마자 기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옷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고심이 깊다. 의류 도매업계에선 "가을이 순삭(순간 삭제)"됐다며 재고 처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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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더운 여름 끝나자 바로 겨울…10월에 등장한 코트·목도리━
반면 한파 특보는 최근 3년과 비슷한 일자에 발효됐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기상특보 자료를 보면 여름 이후 가장 처음 발효된 한파 특보는 △2021년 10월16일 △2022년 10월17일 △2023년 11월6일로 기록됐다. 올해는 지난 19일 강원도 북부 산지에 한파특보가 처음 내려졌다.
여성 의류 전문도매상가 안은 겨울 준비에 한창이었다. 매장 안에는 갖가지 색의 니트가 진열됐고 겨울 패딩과 무스탕 등 두꺼운 외투도 걸려 있었다. 코트 위에 목도리가 둘려 있는 마네킹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의류 판매상들은 사라진 가을에 "혼란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B 의류 전문도매상가에서 옷을 판매하는 김모씨(53)는 "여름이 지나고 바로 겨울이 됐다"며 "12월 말이면 봄옷이 들어오는데 11월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남는 가을옷 재고를 싼 가격에 일명 '땡처리' 하기로 했다 그는 "도매상 옷을 싸게 사 가는 사람들이 있어 저렴한 가격에 보내고 있다"며 "가을옷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소매상들도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C상가에서 브랜드 의류 매장 매니저로 근무하는 정모씨(49)는 "가을 재킷은 걸어 놔도 찾는 사람이 없다"며 "이런 후드티도 입기 애매하니 잘 안 산다"며 티셔츠를 들어 보였다.
같은 상가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사장 정모씨(53)는 "가을옷 매출이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며 "재고를 안 남기려 가격을 낮춰 판매했다. 남은 재고는 매장 사이사이 진열해놓고 계속 판매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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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겨울옷 살래요" 눈 돌리는 소비자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가을옷은 필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인 김모씨(25)는 "여름이 길어지고 바로 겨울로 넘어가니 가을옷 말고 겨울옷을 사자는 생각"이라며 "가을에 새 옷을 입고 코스모스 축제 같은 곳에 가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코스모스 축제도 반소매를 입고 간다. 가을옷 입는 재미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기학자인 조천호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데이터를 살펴보면 봄과 가을 등 환절기 길이는 큰 변화가 없다"면서도 "대신 여름이 길어지며 봄은 좀 더 빠르게, 가을은 좀 더 늦게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시민들이 체감하기에 가을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 박사는 여름이 길어지는 경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온실가스는 배출이 된 이상 사라지지 않아 전체적인 추세로 보면 기온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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