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뮤지션이 만든 가슴 시린 애가(哀歌)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 2024.10.21 13:27

[김고금평의 열화일기] 권진원 작사·유태영 작곡의 '안녕 나의 날들'…EDM 홍수 속 느리지만 깊은 선율의 재발견

재즈보컬리스트 루카 마이너(Luca minor).

무더운 여름에 나왔지만, 차가운 바람이 얼굴 넘어 가슴까지 시큰거리는 이 가을에 안성맞춤이다. 잠시 흐트러진 청취의 나태함이 이 곡의 시작으로 멈췄다.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반박자 느린 피아노의 따뜻한 울림, 그 속을 파고드는 건조하고 투박한, 그러나 결코 의미를 잃지 않는 깊은 우수의 흔적을 간직한 보컬 톤에 흠뻑 빠졌다.

이 곡을 듣는 순간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 들을 땐 미니멀리즘으로 구현된 보컬과 피아노의 단단한 울림에 놀라다가, 두 번째 청취에선 애이불비(哀而不悲) 같은 시린 가사에 옷소매를 적실 뻔했다.

지난 6월 발매된 '안녕 나의 날들'이라는 제목의 3분짜리 3박자(왈츠) 곡을 30년의 세월 같은 드라마로 펼쳐 놓은 주인공들은 낯설지만 눈에 밟힌다. 노래한 재즈보컬 루카 마이너(Luca minor)는 지난 2023년 정규 1집 발매 후 제20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무대 등에 오르며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섬세한 표현력과 따듯한 목소리가 장점이다.

언뜻 들으면 여자 목소리로 오해할 수 있지만, 남자 목소리다. 음악 관계자들은 "쳇 베이커를 처음 들었을 때 듣던 여자 목소리 느낌"이라고 했다. 재즈 팝을 주로 노래한 그의 창법이 이번 곡을 통해 좀 더 발라드풍으로 바뀌고 더 깊은 우수의 울림으로 채색된 건 전적으로 작곡가 유태영의 공이 크다.

싱어송라이터 권진원의 딸 유태영 작곡가.

유태영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UCL에서 석사, NYU(뉴욕대) 영화음악 석사학위를 각각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음악인이다. 영문학도에서 작곡가로 전향한 그는 2019년 첫 정규음반 '그날, 문을 열다'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왔다. 현재 미국 LA에서 방송·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음악적 능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싱어송라이터 권진원의 딸로, 그의 이번 곡도 아주 간단한 코드로 깊은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작곡 능력의 권진원의 패턴과 구성을 쏙 빼닮았다. 어느 마디에서도 유치한 구성이 없고 시작부터 마침표까지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묵직한 선율의 힘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런 곡에 맞춰 권진원이 가사를 입혔다. '안녕 나의 날들/떨림의 나날들/완벽했던 시간/아름다운 사랑/~/마음 속에서 춤을 추었지/그대의 두 손을 이제 놓아준다/안녕 나의 날들/떨림의 나날들/꿈꾸었던 시간/아름다운 착각'('안녕 나의 날들' 중에서)

싱어송라이터 권진원.

아름다운 사랑을 아름다운 착각으로 기억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대를 놓아줘야'하는 이별의 시간을 덤덤하지만 아프게 그린 사연이 이번 겨울 내내 누군가의 마음 속에 머무를 것 같다.

권진원-유태영 모녀의 합작은 최근 KBS 드라마 '다리미 패밀리' OST에서도 이어졌다. 엄마 권진원의 곡 '살다보면'을 딸이 스트링 편곡을 맡아 모녀 협업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컴퓨터로 버무린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 중심의 음악이 각광받는 시대에 여전히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호소하는 아날로그 음악의 생성과 귀환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세 사람이 보기 좋게 빚은 합작품이 '아름다운 착각'이 아닌 '아름다운 꿈'으로 계속 빛나길 기대한다.

베스트 클릭

  1. 1 [더차트] 하버드·MIT 제쳤다…미국 대학 1위는 어디?
  2. 2 [단독]입주 한달 전 둔촌주공 1.2만세대 '날벼락'…준공승인·임시사용승인 모두 '불가'
  3. 3 강남 모인 희망퇴직·권고사직 100명, 얼굴에 '웃음꽃' 핀 이유
  4. 4 '정년 65세' 시대 열렸다…행안부 공무직부터 정년 최대 65세로 연장
  5. 5 "신고 좀" 휴게소 화장실서 다급한 부탁…'이별 통보' 여친 폭행·납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