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환, 결국 모든 걸 해낼 연기도 인성도 ‘베테랑’ [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4.10.20 10:00
신승환 / 사진=신스타 ENM


하필이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를 뚫고서, 그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기자에게 걸어와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머리카락에선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동행인 하나없이 운전대를 직접 잡고서는, 도로가 꽉 막힌 먼 거리를 달려와 비까지 맞은 상태였지만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만이 자리해 있었다. 대화도 나누기 전 알 수 있었다. 신승환은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신승환을 만난 건 영화 ‘베테랑2’(감독 류승완)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현재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한 ‘베테랑2’는 극장가에 활기를 더한 올해 추석극장가 최고의 흥행작이다. 이 작품에서 신승환은 주연배우 황정민, 정해인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극적 재미를 톡톡히 불어넣는 신스틸러다. ‘베테랑1’에도 출연했던 그는 ‘베테랑2’에서 더욱 커진 역할로 유머와 시사점을 동시에 남기는 여운 짙은 인물을 연기했다.


‘베테랑1’에서 신승환이 맡은 인물은 사회부 기자였고, 역할 이름도 ‘박기자’였다. ‘베테랑2’에선 ‘박승환’이라는 제대로 된 배역 이름이 붙었다. ‘베테랑’ 시리즈에서 이름을 갖게 된 신승환은 “무조건 잘해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박승환의 서사를 탄탄하게 만들어 갔다. 극 중 박승환은 뇌물을 받고 언론사에서 해고된 후 ‘정의부장TV’를 운영하는 유튜버다. 사실상 자극적인 소재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이버 렉카다. 신승환은 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눈에 핏줄이 설 때까지 각종 정치 유튜브를 모니터했다.


“정의부장 박승환은 이제껏 제가 맡았던 악역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현실적인 빌런이잖아요. ‘베테랑2’ 촬영을 끝내고 나서 실제 사이버 렉카가 엄청난 화두가 되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니까 책임감이 더 막중했죠. 국내 정치 유튜브는 정말 거의 다 봤어요. 보면서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보다 보니까 이게 정말 사회적으로 파장과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더 이 인물을 정말 잘 표현해서 미워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이 아닐 걸 믿게끔 선동해야 하는 역할이어서 발음이나 말의 속도, 제스처를 많이 연구했어요.”


신승환 / 사진=신스타 ENM


‘베테랑2’ 속 신승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욕 나올 만큼 비열했다. 가짜를 진짜처럼 선동하고, 말에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사이버 렉카 그 자체였다. 인이 배길 만큼 연기 경력이 오래된 신승환은 가진 역량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캐릭터를 연구하고 작품에 골몰하며 ‘베테랑2’에 서사를 더욱 탄탄하게 부여했다.


“‘베테랑1’ 때 실제 기자들도 만나고 뉴스 모니터도 많이 했어요. 수첩과 핸드폰 2개를 들고 등장한 것도 실제에서 착안해 디테일을 가져간 부분이었어요. 그것처럼 이번에도 유튜브를 보다 보니 사이버 렉카들이 관심 없는 제가 들어도 혹할 정도로 종교처럼 자기 이야기가 진리인 것처럼 현혹하고 있는 면을 봤어요. 그런데 PPL을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게 또 꼴보기가 싫고 그렇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정의부장이 방송할 때 협찬품이 펼쳐져 있으면 캐릭터가 좀 더 살 것 같다고 의견을 냈어요. 감독님께서 정말 좋다고 해주시면서 제 의견을 들어 주셨어요. 물품을 다양하게 꾸려서 그런 디테일을 정말 다채롭게 만들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캐릭터의 성향을 더 자세하게 드러낼 수 있었죠.”


‘베테랑2’는 단순한 선과 악의 구조가 아닌 정의와 신념에서 점철된 갈등 구조와, 그릇된 신념을 부추기는 박승환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시사점을 남기기도 한다. 신승환은 박승환이라는 인물이 극에서 시사하는 바를 명확하게 포착하며 진정성 있게 한신 한신 빚어냈다.


“박승환이 오히려 해치(정해인)나 서도철(황정민)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이버 렉카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그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높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더 크게 일으키는 인물이잖아요. 해치라는 괴물 같은 인물을 영웅화시켜서 팬덤을 만들고 그걸로 돈벌이하고요. 정의가 무엇이고 어떤 게 옳은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는 불편한 심리를 건드리는 게 정의부장 박승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의부장이라는 닉네임 자체가 역설적이잖아요. 그것을 억지스럽거나 모자라지 않고 힘 있게 끌어가면서 불편함을 드리고 싶었어요.”


신승환 / 사진=신스타 ENM


신승환은 ‘베테랑2’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엔딩인 터널 신을 꼽았다. 정의부장은 이 터널 신에서 해치에게 붙잡혀 목숨을 위협받는데,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켜서 “좋아요”를 외치며 구독을 독려한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정의부장이 ‘좋아요. 구독’을 외치는 장면은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정의부장을 통해서 사이버 렉카들의 행동이 얼마나 자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봐주셨으면 해요. 이 장면을 한번 호흡을 빼서 보면 언행이나 미디어가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바라기도 해요. 배우로서는 그 장면이 인간적으로 풀려야 미움이 상쇄될 것 같기도 했고요.“


‘베테랑’ 속 신승환의 역할은 마치 ‘범죄도시’의 장이수(박지환)를 떠올리게도 한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감초로서, 작품에 특색을 부여하는 역할을 1편과 2편 모두에서 해냈기 때문이다. 3편 출연 제의가 오면 어떨 것 같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말 좋다”라고 말할 만큼 커다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즌3에도 나오게 된다면 정말 좋죠. 불러주시면 맨발로 유리 위를 걸어서라도 가야죠. 제 역할이 극 중에서 바이러스를 뿌리는 아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쁜 기운이 쌓여가는 인물이죠. 감사하게 악을 악으로 행하는 느낌보다는 조금 모자란 여백 있는 느낌들이 B급 감성을 줘서 무거운 신에서 환기를 시켜주는 캐릭터성이 잘 풀려있는 인물이에요. 덕분에 일단 죽지 않았잖아요.(웃음) 기자, 유튜버까지 다양한 직업군에서 악의 순환을 잘 바꿔 가는 인물이라 이제 뭐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신승환 / 사진=신스타 ENM


‘베테랑’은 신승환에게 분명한 기회였다. 그 기회를 확실하게 잡은 그는 자신의 가능성, 그리고 배우로서의 미더움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확실히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했어요. 그 성장안에 다음의 성장 가능성을 느껴서 더 좋았어요.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 더욱 느꼈고요. 무대 인사를 다녔을 때 정말 재밌고 좋았거든요. 무대에 서서 처음과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의 응원을 딱 받는데 그들이 재밌게 봤다는 확신의 에너지를 줘서 정말 좋았어요. 저는 한 번 빼고 모든 무대 인사에 다 참석했고, (정)해인이는 전부 다 참석했어요. 해인이랑 웬만한 영화 찍는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운이었고 복이었어요.”


신승환과 한 번도 호흡하지 않은 제작진은 있어도 한 번만 호흡한 제작진은 거의 없다. 류승완 감독도 ‘베테랑1’ 이후 ‘군함도’(2017)와 ‘베테랑2’에서 그와 함께했고, 그의 출세작인 SBS 드라마 ‘피아노’(2001)의 오종록 감독도 MBC ‘사랑한다 말해줘’(2004), SBS ‘대물’(2010) 등 신승환과 여러 차례 손발을 맞췄다. SBS ‘자이언트’(2010)의 이창민 감독도 SBS ‘마이더스’(2011)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018) 등에서 신승환을 계속 찾았다.


특히 ‘대물’의 조연출이었던 김홍선 감독은 현장에서 각별히 눈여겨봤던 신승환에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니 언젠가 꼭 좀 함께해달라”라고 말한 후 영화 입봉작 ‘공모자들’(2012)에서 그를 불렀다. 이후 ‘늑대사냥’(2022)까지 연을 이어왔고, 영국 인기 범죄물 ‘갱스 오브 런던3’ 연출을 맡게 되자 재차 신승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 모든 행적은 그가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는 잘 해왔고, 또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는 커다란 증거다.


“저는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출연작을 다음 직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다음 직장만 있으면 돼요. 감사하게도 다음 일도 잡혀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저도 그런 위치가 됐을 때 모른 척하지 않고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영리하거나 재빠르진 않지만, 뚝심 있게 열심히 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은 참 좋은데’라는 말은 듣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어요. ‘사람도 좋은데 연기도 잘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결국은 해내네 신승환’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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