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란’ 박정민, 강동원도 노비로 부릴 만한 기품 있는 양반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4.10.17 16:36
'전, 란' 박정민 / 사진=넷플릭스


배우 박정민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전, 란’으로 찾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가 양반이고, 강동원 선배님이 저의 종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거듭 강조한 박정민의 모습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오픈 토크에서도 “강동원이 노비이고 내가 양반인 설정은 이 작품의 신의 한 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비 강동원과 그를 부리는 양반 박정민의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 란’을 보고 나면 “신의 한 수”라던 박정민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전, 란’ 속 박정민의 모습은 양반 그 자체다. 비단옷이 찰떡같이 어울리고,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에 기품이 있다. 걸음걸이조차 양반의 자태를 갖춘 그는 오직 연기로 신분의 품격을 진하게 보여준다.


'전, 란' 박정민 / 사진=넷플릭스


박정민은 이에 그치지 않고, 복잡다단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세심하게 펼치며 “아이고 불쌍한 양반”이라는 탄식에서 “옛끼 이 양반아”라는 분노가 나오게 만든다. ‘전, 란’에서 박정민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외아들 이종려로 등장한다. 종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무예를 가르쳐주며 허울없이 지낸 노비 천영(강동원)과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을 보여준다. 좀처럼 무예 실력이 늘지 않았던 종려를 위해 천영이 대신 급제에 나서 장원을 받아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종려는 선조의 최측근 무관이 된다.


종려는 천영이 급제를 받아주면 면천해주겠다는 약조를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이를 지키지 못해 가슴앓이한다. 이때까지도 종려의 얼굴은 한없이 다정했고 또 측은했다. 천영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고, 언뜻 가냘프게도 보였다. 하지만 선조와 피난을 가던 중 천영이 자신의 일가족을 몰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종려는, 그 말을 듣던 찰나에 낯빛을 철저하게 바꿔 낀다. 종려의 얼굴에는 악에 받친 이의 격렬함, 분노에 찬 이의 비열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전, 란' 박정민 / 사진=넷플릭스


“주인을 무는 개는 죽일 수밖에”라고 말하는 종려의 비릿한 얼굴은 강렬한 살기가 화면마저 뚫고 나온다. ‘전, 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종려를, 다름 아닌 박정민이 연기한 것은 그의 말마따나 정말 신의 한 수다. ‘전, 란’에서 가장 극적으로 감정의 파동을 타는 박정민의 연기는, 그 유려한 감정 변화에 가장 강렬한 몰입의 순간을 선물한다. 마지막 장면의 회한은 종려의 후회가 오롯하게 전해져 탄성이 나올 정도다. ‘전, 란’의 선봉은 강동원이 잡았으나, 후방을 든든히 방어하는 건 바로 박정민이다.


탁월한 해석력으로 대체 불가한 캐릭터를 선보여 온 박정민은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배우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The 8 Show(더 에이트 쇼)’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극에서 늘 압도되는 연기를 보여줬다. 현실에서 볼 법한 영역을 적절히 섞어가며 자신의 연기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으로 도전한 사극에서 변치 않은, 아니 오히려 향상된 연기 능력을 보여준다. 늘 잘 해오던 연기에 사극 톤을 완벽하게 잡아내고 분위기를 새롭게 끌어오는, 그렇게 얼굴 폭을 또 한 번 넓힌다. 그렇게 수없이 얼굴을 갈이 끼웠던 그는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말할 만큼 끊임없이 자신을 분화해 왔다. 하지만 한계를 말하는 그의 앓는 소리는 진심을 밀어 넣어 트렌스젠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나 지적장애인(‘그것만이 내 세상’)을 연기한 지난 행적으로 오히려 너스레 정도의 미더움을 더 갖게 만든다. 강동원을 종으로 부려도 납득 가능한 그림을 보여주는 연기의 경지인데, 무슨 캐릭터든 상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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