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덮친 불길, 1000명이 갇혔다…289명 삼킨 최악의 참사[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4.10.28 06:00

편집자주 |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5년 10월 28일 오후 6시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북부의 울두즈 역에서 나리마노프 역으로 가고 있던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해 289명이 사망하고 270명이 다쳤다. /사진=러시아 의용소방기구(VDPO)

1995년 10월 28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지하철 화재가 발생해 289명이 사망하고 270명이 다쳤다.

이날 오후 5시58분쯤, 바쿠 북부의 울두즈 역에서 나리마노프 역으로 가고 있던 한 5량 열차 뒤쪽에서 불이 났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지하철엔 1000명이 넘는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서 화재…터널에 멈춘 열차, 문 안 열려 '패닉'


1995년 10월 28일 오후 6시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북부의 울두즈 역에서 나리마노프 역으로 가고 있던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해 289명이 사망하고 270명이 다쳤다./사진='1뉴스' 캡처

5개 차량으로 이어진 지하철 중 5호차에 탄 승객들은 연기 냄새를 맡았고, 이후 4호차 승객들은 열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얗던 연기는 점차 검게 변해갔고, 차내를 가득 메웠다.

열차는 울두즈 역에서 약 200m 지난 지점, 지하 터널 한가운데에 멈추어 섰다. 열차를 가득 메웠던 연기는 터널로 번지기 시작했고, 터널 안이 연기로 가득 찼다.

불이 난 것을 알게 된 기관사는 차량을 좁은 터널에 세운 뒤 화재 사실을 보고했고,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차량의 전기를 차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시각 열차 안에선 좌석과 내부 패널에 불길이 번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승객들은 쉽게 탈출할 수 없었다. 기차 문이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들도 이를 열지 못해 쩔쩔맸다. 당황한 승객들은 패닉에 빠졌다.

일부 승객은 창문을 깨고 열차에서 탈출했다. 깨진 창문은 탈출구도 됐지만, 열차 내부로 연기가 빠르게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열차에 있던 승객 후세노프 씨는 "열차가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불빛이 번쩍하더니 불꽃이 열차를 집어삼켰다. 어디선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창문을 깨기 시작했고, 이후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어두운 터널 속 2㎞ 걸어서 대피…전선 잡아 감전사하기도


불이 난 열차가 어두운 지하 터널에 멈춰서는 바람에 피해는 더욱 컸다. 열차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승객들은 열차 뒤쪽으로 200m만 가면 울두스 역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이쪽에 불길이 거세지면서 열차가 향하던 방향으로 2㎞ 거리의 나리마노프 역으로 향해야 했다.

짙은 연기가 터널을 가득 메웠고, 레일 사이사이 도랑이 있어 어둠 속에서 대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의 옷을 잡았고, 터널 벽과 철로를 지침 삼아 의지했다. 힘겹게 열차를 빠져나왔지만 탈출하려는 승객과 연기 등으로 혼란한 가운데 어둠 속 터널에서 전선을 잡아 감전사하기도 했다.


유독한 연기를 내보내기 위해 사고 15분 만에 조정된 환기 시스템도 대피를 방해했다. 사고 초반만 해도 연기는 천천히 울두즈 역으로 향했으나 환기 시스템이 '비상 설정'으로 조정 이후엔 대부분의 승객이 향하던 나리마노프 역으로 향하면서 시야를 방해했다.



화재 원인은 노후 장비…'289명 사망' 최악의 지하철 참사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발생한 지하철 화재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1995년 10월 30일 열린 대규모 장례식에서 애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화재 원인은 노후화된 장비의 전기 결함으로 드러났다. 승객 1000여 명 중 400여 명만 겨우 탈출했고, 사망자 대부분은 열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깔려 죽거나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졌다. 플라스틱 등 100% 가연성 물질로 된 차량 내부가 타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일산화탄소를 발생시켰고, 열차 문이 열리지 않아 피해가 컸다.

소방 당국의 대처도 미흡했다. 소방대원은 사고 20분 만에 출동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사고 관련 훈련을 받지 않은 지하철 역무원들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승객 대부분은 불길을 피해 독성 연기 속에서 2㎞ 떨어진 나리마노프 역으로 대피했으나 소방대원들은 모두 울두스 역으로 출동했다. 나리마노프 역으로 올라온 생존자들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다.

화재는 6시간 만에 최종 진화됐지만, 열차는 금속 프레임만 남고 모두 타버렸다. 뜨거운 화염에 바퀴는 말 그대로 레일에 붙어버린 상태였다. 메케한 연기 냄새가 가득한 터널에서는 미처 탈출하지 못한 승객 40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289명, 부상자 270명이라는 세계 지하철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참사였다. 당시 게이다르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사고 후 3일을 희생자를 위한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희생자들의 장례 비용은 국가가 부담했고, 유가족에게는 100만 마나트(현재 한화 약 8억원)가 지급됐다.

조사 결과, 기관사가 터널에서 열차를 정차하기로 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기관사는 아제르바이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역 교통 관제사는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바쿠 지하철 화재 참사는 사망자 289명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참사로 꼽힌다.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지하철 사고는 2003년 2월 대구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다.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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