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오케스트라는 원래 무대였다

머니투데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 2024.10.18 02:05
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국어사전에는 '관현악을 연주하는 단체'라고 나와 있다. 관현악단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원래 '춤추는 장소', 즉 '무대'라는 뜻이었다. 전혀 다른 뜻이다. 무대가 어쩌다 관현악단이 됐을까. 이 변화에 2500년 극장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극장은 고대 그리스 극장이다. 신화와 이성 간의 긴장과 조화가 연극과 극장을 만들었다. 디오니소스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디오니시아 제전에서 서기전 534년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났다. 최초의 배우 테스피스가 코러스의 리더와 대사를 주고받음으로써 연극의 원시적인 형태가 갖춰진 것이다. 이후 제2, 제3의 배우가 추가되면서 그리스 비극이 완성됐다.

그리스의 독특한 지형은 도시와 극장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줬다. 육지의 80%가 산지인 그리스에서는 높은 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독립적인 수많은 도시국가가 형성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마다 극장을 지었다. 그들은 에게해 주변의 우묵한 산지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대규모 계단식 객석을 건축했다. 극장의 형태는 대부분 반원형이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극장은 200개 정도다. 주로 현재의 그리스와 튀르키예,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여러 가지 어휘를 낳았다. 우묵한 계곡에 만든 계단식 객석을 테아트론(theatron)이라 불렀는데 이는 극장(theatre)의 어원이 됐다. 무대는 오케스트라(orchestra)라고 불렀고 무대 뒤에는 스케네(skene)라는 배경건물이 있었다. 스케네는 분장실과 등퇴장구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발전해 현대 극장의 액자틀무대가 됐고 거기에 스크린이 추가돼 영화관이 됐다. 스케네는 장면(scene)과 무대장치(scenery) 영화(cinema) 등의 어원이 됐다.

로마인들도 도시마다 극장을 지었다. 기존 그리스 극장들을 로마식으로 리모델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새롭게 건축했다. 산지를 이용해 대규모 객석을 지은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들은 아치기술을 이용해 평지에도 거대한 극장을 건축했다. 그리스 극장의 테아트론과 스케네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그것들을 하나로 합치고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주변 전역에 600개 이상의 로마 극장 유적이 남아 있다.


세속적이고 쾌활한 성향의 로마인들은 철학적이고 진지한 성향의 그리스인들과 달리 비극보다 희극을, 대사극보다 유혈활극을 즐겼다. 로마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액션 스펙터클'을 위해 새로운 극장을 발명했다. 2개의 반원형 극장(theatre)을 양쪽(amphi-)에서 마주보게 붙이고 가운데를 튼, 원형극장(amphitheatre)이 그것이다. 콜로세움이 그 대표적인 극장이다. 그 무대 바닥에 흘린 피를 빠르게 청소하기 위해 모래(arena)를 깔았기 때문에 원형극장을 아레나라고도 부른다.

서기 392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해진 이후 공연은 금지되고 극장은 채석장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중세 1000년이 지난 후 다시 극장이 지어졌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극장에서 스케네는 액자틀로 변하고 테아트론은 여러 층의 말굽형 객석으로 바뀌었다. 연기공간이 단상무대로 옮겨가면서 원래 무대였던 오케스트라는 점차 객석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1층 객석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페라가 성행하면서 1층 객석과 단상무대 사이에 악단이 자리잡게 됐는데 그곳을 오케스트라박스라고 하고 그 속에 있는 연주단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게 됐다.

이 가을, 몇 편의 대형 오페라가 무대에 오른다. '탄호이저'와 '투란도트', 그리고 또 하나의 '투란도트'가 각각 오페라극장과 아레나, 이벤트홀에서 막을 올린다. 그곳에서 테아트론과 스케네, 오케스트라를 보며 그 이름의 변천사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베스트 클릭

  1. 1 "박지윤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최동석 막말 심해"…누리꾼 반응 보니
  2. 2 [단독]"막걸리 청년이 죽었다"…숨진지 2주 만에 발견된 30대
  3. 3 최동석 "남사친 집에서 야한 영화 봐"…박지윤 "성 정체성 다른 친구"
  4. 4 "어머니 아프다" 돈 빌려 도박한 이진호…실제 모친은 '암 말기'
  5. 5 치열했던 10·16 재보선···한동훈·이재명·조국 엇갈린 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