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필획의 경지"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예술혼, 과천에서 완성되다

머니투데이 경기=권현수 기자 | 2024.10.15 13:22

추사의 마지막 예술혼이 깃든 걸작 과천에서 정점...'불이선란도', '대팽고회 대련', '판전'
'추사체' 서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글씨로 평가...김정희 선생의 독창성은 많은 서예가·예술가에게 깊은 영감
신계용 과천시장 "추사체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연구와 보존 확대할 것"
추사아트페스티벌 오는 19~20일 추사박물관서 개최

추사박물관에 전시된 김정희 선생의 작품들./사진제공=과천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는 서예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글씨다."

예술의 가치는 당대의 평가와 더불어 후대에 재조명되기도 한다. 여기서 그 평가의 기준은 바로 '창조성'에 기반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 정조10∼1856, 철종7)선생은 그 이전 서예가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담은 금석기의 강한 필체를 접목해 '추사체'라는 새로운 글씨를 창조했다. 이는 전통적 서예 양식을 뛰어넘어, 서예사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추사체는 서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글씨체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며, 그 독창성은 많은 서예가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마치 아무렇게나 쓴 듯 보이는 필획 속에는 추사만의 깊은 예술적 통찰과 철학이 담겨 있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추사 금석학 박사)은 15일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가 만들어진 배경은 중국 서예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는 실제 중국 한자의 원형으로 알려진 서한시대 비석에 쓰인 글씨(북쪽 계열·투박하고 거친 형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추사체를 재창조해낸 것이다. 쓰는 법(붓질), 글자의 구성 등에서 독창성을 발휘했으며 100자 남짓 남아있던 서한시대 글씨를 학술적으로 접근해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어냈다"면서 "그가 창조한 추사체는 단순한 필체를 넘어 예술적 가치와 서예의 원형을 복원한 글씨로 서예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후대까지 이어져, 창의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서예·예술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즉흥적인 듯 보이나,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예술의 경지에 이른 '추사체'


추사체는 독창적인 글씨체로, 서예를 잘 모르는 사람도 독특한 개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단순히 형태적인 글씨가 아니라, 추사의 기(氣)와 혼(魂)이 서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예가와 역사학자들은 "누구나 추사체를 쓸 수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추사체는 쓸 수 없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이 있는 예술적 통찰과 경험이 담겨 있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추사박물관에 전시된 김정희 선생의 작품들./사진제공=과천시
추사체의 특성은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괴'(怪)와 '졸'(拙)이다. '괴'는 추사체가 지닌 개성적인 측면을 나타내며, 독창적인 글씨체를 의미한다. 반면 '졸'은 추사체의 심오한 경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에서 비롯됐다. 꾸밈없고 순수한 경지를 뜻한다. 추사체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예술적 통찰이 담겨 있다.

추사는 과천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과천시는 추사체의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있다. 2004년 '추사글씨 탁본전'을 개최하면서부터 추사를 기리기 시작했다. 2006년 추사 서거 15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추사연구자였던 후지츠카 치카시의 유물을 기증받아 추사의 학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추사가 거주했던 과지초당은 2007년에 복원됐다. 주암동 184-2번지에 위치한 이곳은 추사 가문의 별장이자 말년에 머물렀던 대표적인 유적지다. 추사는 이곳에서 여러 걸작을 남겼다.
신계용 과천시장이 추사박물관 기획전시전에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사진제공=과천시
추사박물관은 2013년 개관 이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학술적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외 관람객에게 추사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며 그가 남긴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신계용 과천시장은 "추사체는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추사 선생의 예술혼이 담긴 독창적 작품"이라며 "과천시는 추사체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와 보존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추사의 마지막 예술혼이 깃든 걸작, 과천에서 완성되다.


추사가 과천에 있는 청계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24년쯤(추사 30대 후반) 가문의 별장인 과지초당을 현재의 주암동(현 추사박물관 지리)에 조성하면서부터이다. 1837년 아버지 김노경(조선 후기 고위 관료) 사후, 청계산 중턱에 묘를 조성하고 3년 상을 치르며 과천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 함경도 유배 생활을 마친 1852년 과천으로 돌아와 생애 마지막 4년을 과지초당에서 보냈다.

과천에서의 추사는 예술가로서 성취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과천을 소재로 한 여러 시를 남기며 지역과의 깊은 연대감을 표현했다. 과천을 "산빛은 밥을 지을 만하고, 물은 떠마실 만하다"고 표현하며 청계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신계용 과천시장이 추사박물관 기획전시전을 감상하는 모습/사진제공=과천시
추사의 말년 작품은 자기 삶과 예술 철학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대팽고회(大烹高會) 대련' 그리고 추사의 절필작인 봉은사 '판전'(板殿)이 있다.

추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불이선란도'는 불교에서 참선과 난을 그리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담은 작품이다. 불교적 사상과 예술적 표현이 결합된 이 작품은 추사 선생의 정신세계와 철학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판전'은 추사 선생의 절필작으로, 한 점의 속된 기운도 없는 고졸(古拙)한 글씨로 평가된다. 꾸밈없고 순수한 예술적 경지를 나타내며 추사체의 독창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이 글씨는 단순한 서예작품을 넘어 추사 선생의 삶과 예술혼을 표현했다.

'대팽고회 대련'은 일상의 소중함, 깨달음을 찾는다는 철학을 함축하며 과천에서 보낸 그의 마지막 시기의 예술적 정수를 담고 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한다...'추사아트페스티벌'


과천시 추사로 78(주암동)에 위치한 추사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2층 규모로 총 부지면적은 4299㎡, 건축연면적은 3019.94㎡이다. 박물관은 추사의 고택이었던 과지초당을 복원한 야외 공간을 비롯해, 독우물, 추사마당 등의 시설을 갖췄다. 박물관 내부에는 총 전시면적 765㎡를 포함해, 유물 보관을 위한 수장고, 교육실, 문화상품점 등이 마련됐다.
추사박물관 전경./사진제공=과천시
추사박물관은 추사의 예술적 업적을 조명하기 위해 상설전시실 3곳에서 176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으며, 매년 3회 기획전시를 통해 다양한 주제로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후지츠카 치카시가 기증한 유물과 그 외 구입 유물 등 소장품 1만6329점을 보유하고 있다.

과천시는 오는 19~20일 추사박물관에서 '제1회 과천 추사아트페스티벌'을 연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한다. '추사에서 현대로', '함께 즐기고 체험하는 추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추사 선생의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예정이다.

베스트 클릭

  1. 1 40대 아들에 '부엌칼' 던진 아버지…"아들은 처벌 바라"
  2. 2 도박 위해 사채까지 쓴 이진호…이수근이 수천만원 빌려주며 한 조언
  3. 3 동생은 붙잡고, 형은 80번 찔렀다…"피나요, 빨리요" 다급했던 그날[뉴스속오늘]
  4. 4 사채까지 당겨쓴 이진호 빚 원금만 '23억'…"부모님 일" 핑계도
  5. 5 최태원·노소영, 나란히 혼주석 앉았다…결혼식 앞서 '전우 위한 묵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