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박정민, 제멋대로 연기하지 않아 탄생한 이종려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 2024.10.14 17:09
/사진=샘컴퍼니


배우 박정민은 변화무쌍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에서는 달랐다. 제멋대로 하지 않고 틀에 가둔 연기는 또다시 박정민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었다.


지난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박정민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로 어릴 적 몸종으로 들인 노비 천영과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눴으나, 왜란이 터지고 모종의 사건으로 천영과 원수지간이 된 이종려 역을 맡았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전,란'과 이종려 그리고 자신의 연기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전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지난 2일 미리 공개되기도 했다. OTT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전, 란'이 처음이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다는 뜻이며 작품이 공개된 이후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박정민은 "반응을 보고 한시름 놨다"며 전반적인 작품 공개 이후의 소감을 전했다.


"주변에서 재미있게 봐주셨다고 해서 한시름 놨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제가 찍었던 영화가 맞나' 싶어서 놀라기도 했어요. 촬영할 때 연기하는 데 집중하느라 현장 편집본도 잘 안 봤거든요. 음악이 더 해지고 편집된 것을 보니 감독님이 계획이 다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들었어요.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좋은 이야기도 보고 안 좋은 이야기도 봤는데 '지금 시대에 필요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반응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시나리오에 끌렸던 이유기도 했거든요."


'전,란'의 오프닝 시퀀스는 대동계를 주장했던 정여립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쟁을 다룬 사극이지만 결국 '전,란'은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박정민이 '전,란'에 끌렸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한 시나리오를 좋아해요. 감독님과 명확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저도 명확하게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란'은 더불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 계급에 대해 배우면 그 옛날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데 사회에 나가다 보면 비단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전,란'을 만났어요. 무의식적으로 나눠진 계급 사회에서 어떤 걸 양보하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또 이종려라는 인물이 양반이지만 양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도전해 볼 만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사진=샘컴퍼니


자신의 몸종 천영과 신분을 뛰어넘어 우정을 쌓았던 종려는 천영이 자신의 일가족 모두를 살해했다는 오해에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는 등 부침이 큰 인물이기도 하다. 박정민은 이러한 종려를 표현하기 위해 제멋대로 하지 않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관객분들께 종려의 감정 변화가 납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에게 오는 감정도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서 파고들어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내 멋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작품이 긴 호흡이었다면 풀어내기에 용이했을 텐데 2시간 안에 왔다 갔다 하는 감정 포인트를 잡아내는 게 어렵긴 했어요."


박정민의 말대로 2시간의 압축된 분량을 가진 '전,란'의 감정선이 다소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박정민은 결국 종려도 무의식적인 계급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생각한 감정선을 설명했다.


"작가님이 글을 쓰고 감독님이 각색을 할 때 본인이 몰입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감정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안에서 감정을 찾아가야 하는 건 제 숙제고요. 천영이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는 '이놈도 어쩔 수 없는 양반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우정이라는 개인적 감정이 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계급의식이 있던 거죠. '천한 것에게 양반이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결과가 이렇다니'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사진=샘컴퍼니


박정민이 '제 멋대로' 연기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전,란'이 데뷔 후 처음으로 주연작으로 나선 정통 사극이기 때문이다. 박정민은 "조금 더 정석적으로 해보고 싶었다"며 첫 사극 주연에 나섰던 각오를 풀었다.


"제 나름대로의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앵글 안에서 정석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나중 문제였어요. 다만 보실 때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그런 고민들을 하긴 했어요."



그렇다면 첫 사극을 마친 소감은 어땠을까. 박정민은 "당분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완성된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당분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 옛날에 지체 높은 양반들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분들께는 격식이었겠지만 불편했어요. 그래도 그런 분장과 의상이 주는 힘이 있어 극과 어울리는 연기를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또 칼이나 소품들이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카메라에 아름답게 담긴 장면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어요."





/사진=샘컴퍼니


임진왜란 7년의 기간을 통째로 건너뛸 정도로 '전,란'은 전쟁보다 인물에 초점을 맟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박정민이 연기한 이종려와 강동원이 연기한 천영이다.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눴지만, 서로 오해가 쌓이며 반목하게 된다. 박정민은 두 인물의 관계성을 쌓아가는 과정에 대해 "과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 안 될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강동원 선배님과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눈 건 없어요. 사이 좋을 때의 장면을 촬영 초반에 거의 다 찍고 넘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형성된 것 같아요. 오히려 '조금 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처음에 천영이가 잡혀 왔을 때 종려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하는데 우정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런 부분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이렇게 두 캐릭터가 쌓아놓은 서사는 푸른 옷의 강동원과 붉은 옷의 박정민의 치열한 검술 액션으로 극에 달한다. 박정민은 "강동원 선배님의 연기를 따라가기 바빴다"며 강동원과의 액션 호흡을 회상했다.


"2~3달 정도 액션스쿨을 다니면서 연습했어요. 제 검이 크고 길고 무거운 중세 시대 기사들이 썼던 검의 모양이에요. 중세 검술을 연구하는 협회가 있더라고요. 저보다 어린 분이 협회장인데 그분을 초청해서 기본적인 중세 검술을 익히고 액션스쿨에서 합을 맞췄어요. 예전에는 시키는 대로 했다면 이번에는 감정적인 액션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천영과 달라 보이고 관계성이 보일지 의견을 냈던 것 같아요. 사실 강동원 선배님은 고수라 말로만 알려줘도 바로 하시는데 저는 합이 바뀌면 구석에서 연습하느라 따라가기 바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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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이렇게 '제 멋대로' 하지 않은 연기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데뷔 14년간 46편의 작품에 출연한 박정민이 앞으로 더 보여줄 모습이 있을까 궁금해는 순간이다. 박정민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제가 변화가 많은 캐릭터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얼굴을 기억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입버릇처럼 내년에는 쉰다고 하고 다니고 있어요. 개인적인 생활을 하면서 얻는 감정과 표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휴식 기간 동안의 박정민의 계획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다시 연기를 신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보고 싶다는 박정민이 휴식 후 돌아올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졌다.


"휴식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른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제가 나온 작품을 다시 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걱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어디서 해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더라고요. 쉬면서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신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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