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EU 인공지능법의 브뤼셀 효과

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2024.10.15 02:03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AI기술이 엄청난 속도와 성능으로 발전함에 따라 이를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게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한 규제 거버넌스 논의가 확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 의회는 세계 최초로 AI시스템 전반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규제체계를 규정한 인공지능법(AI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AI시스템을 안전, 건강, 기본권에 미치는 위험도에 따라 차등화해 규제한다.

EU의 인공지능법도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를 낼 수 있을까. 브뤼셀 효과란 EU의 규제가 회원국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도 이를 따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브뤼셀은 EU 본부가 있는 도시고 여기에서 EU의 법안이 만들어진다.

브뤼셀 효과를 처음 사용한 미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의 브래드퍼드 애누 브래드퍼드 교수에 따르면 EU가 직접적인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EU 규제를 전 세계 기업과 정부가 따르게 된다고 한다.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 EU의 경제적 영향력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이 EU에 접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규제를 따른다는 것이다. 예컨대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은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GDPR에 맞춰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수정하도록 했고 100개 이상 국가가 GDPR와 유사한 데이터보호법을 제정토록 했다고 한다.

EU 인공지능법이 제정된 이후 글로벌 기업이나 다른 국가의 상황은 어떨까. EU 인공지능법 준수부담으로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될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을 유럽에 출시하지 않기로 했고 메타 역시 오픈소스 LLM인 라마3을 유럽에 배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미국은 아직 연방 차원의 규제법을 제정할 움직임은 없고 다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에 관한 행정명령'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AI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AI 규제를 시행한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인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가 지난 6월7일 AI시스템 개발에 관한 권고사항을 발표했는데 혁신적이고 책임 있는 AI시스템 개발을 위한 개인의 권리존중과 혁신의 균형을 취하도록 했다.


영국은 지난 3월 혁신친화적인 AI 규제(A pro-innovation approach to AI regulation) 백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혁신을 저해하는 법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분야별로 AI 규제에 적용 가능한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며 새로운 단일 규제기관을 만들지 않고 기존 관련기관들에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런 영국의 전략은 EU의 전략과 대비된다. EU가 모든 분야에서 AI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단일한 규제 프레임워크하에 중앙정부가 규제하는 수평적 접근법을 취한 데 반해 영국은 맥락에 따른 AI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분야별 개입을 하면서 개별 기관이 규제하는 분야별(domain-specific) 접근법을 취했다. 다만 영국 신정부는 챗GPT와 같은 첨단 AI 모델인 프런티어 모델엔 강제규정을 포함한 법안을 제정하되 비프런티어 모델엔 여전히 분야별 규제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상 글로벌 빅테크에만 법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주요 선진국 어느 곳도 AI에 대해 EU와 같은 포괄적, 수평적, 중앙집권적 법규제를 도입하지 않았고 당분간 도입할 계획도 없다. 이런 점에서 EU 인공지능법의 브뤼셀 효과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만약 한국이 상당수 규제가 포함된 AI 기본법을 제정한다면 브뤼셀 효과를 입증하는 최초 AI 선진국이 될 것이다. 주요 국가들이 EU 인공지능법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 보유 여부와 유사하게 AI기술과 산업진흥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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