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0원?"…러-우 전쟁 이후 핀란드가 만들어낸 기적

머니투데이 헬싱키=김희정 기자 | 2024.10.14 17:02

2030년까지 화석연료 발전 '0' 목표, 우크라 전쟁 이후 속도 올려

핀란드 헬싱키 중앙역에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 핀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지난해 나토에 가입했다.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하자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석 달 후인 2022년 5월 핀란드로의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천연가스와 석유도 장기 공급이 쳬결된 소수의 물량을 제외하고는 공급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1917년 독립 전까지 약 100년 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에겐 2년 8개월째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남 일이 아니다. /헬싱키=김희정 기자 dontsigh@
"핀란드의 중립국 지위 포기와 나토 가입은 실수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석달 만에 러시아는 핀란드에 공급하던 전력을 끊었다. 70년 넘게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온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하자 반발해 에너지 수입을 중단한 것. 핀란드는 전력 사용량의 약 10%를 러시아에 의존해왔던 터다. 러시아와 약 1300㎞ 길이의 국경을 맞댄 핀란드는 그 해 전쟁 여파로 전기요금 폭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핀란드 국민에겐 김치와도 같은 사우나 시간까지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

역설적이게 러-우크라 전쟁은 오히려 핀란드의 에너지 전환을 앞당겼다. 지난해 핀란드의 전기 현물 가격은 폭락하다못해 0원 이하로도 떨어졌다. 현재 핀란드의 전기 요금은 유럽 최저 수준이다. 핀란드는 2030년까지 전력 생산 에너지원의 100%를 화석연료 '0'(제로)으로 만들겠단 목표다. 지난해 이미 94%를 달성했다. 2년이 안 되는 이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정권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목표 "2035년 탄소중립"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지난해 11월 20일(현지시각) 핀란드 동부 쿠모의 한 국경 검문소를 방문해 기자 회견하고 있다. 오르포 총리는 최근 러시아 망명 신청자들의 증가를 막기 위해 지난 17일 4개의 국경 검문소를 폐쇄한 후 추가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핀란드의 폐쇄 조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AP=뉴시스
전기 요금 급등의 파고가 한창이던 2022년 7월 핀란드에선 국가 기후 및 에너지 전략과 기후변화법이 발효됐다. 지속가능발전 목표에 따라 핀란드는 2030년 유럽연합(EU) 기후 공약을 달성하고 2035년에는 탄소 중립, 204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한다는 비전이다. 스웨덴과 독일의 탄소 중립 목표가 2045년인 점을 감안하면 EU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목표다.

기후변화법 발효 후 핀란드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신규 원전을 가동하는 한편 풍력 발전을 적극 확장했다. 지난해 기준 핀란드의 전기 에너지원은 원자력(41%) 수력(18.8%) 풍력(18.2%) 바이오매스(13%) 석탄(2.5%) 태양광(0.8%) 등으로 화석 연료 비중이 낮다. 지난해 핀란드는 이탄과 석탄 소비를 줄여 탄소 배출량을 19%나 줄었다.

탄소 흡수원을 확장하고 환경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청정 기술 솔루션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수소를 통해 직간접적 전기를 얻는 등 신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데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핀란드는 지난해 6월 중도 우파 정권이 들어섰지만, 페테리 오르포 총리의 모든 정책이 기후법에 명시된 탄소 중립 약속에 구속된다.


숲 호수 바다… 자연이 준 바이오 자원, 수소경제 최적화


핀란드 위베스킬레의 한 호수. 곳곳에 호수가 있다보니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 직후 차가운 호수로 뛰어드는게 일상이다. /위베스킬레=김희정 기자 dontsigh@
핀란드 헬싱키공항에 착륙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광활한 숲이다. 국토 면적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숲은 온 국민의 휴식처이자 핀란드 경제의 핵심축이다. 핀란드 순환경제의 주역도 삼림자원이다. 목재, 섬유, 짚 등 산림과 기타 바이오 기반 원료를 다른 재료에 결합해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핀란드 3대 삼림기업 중 하나인 멧사(Metsa) 그룹이 대표적이다.

자회사 멧사파이버의 에네코스키 바이오제품 공장에서는 침엽수 펄프를 사용해 대체섬유 '쿠우라'를 만든다. 화석연료 없이 목재를 고부가가치 지속가능한 제품으로 전환한 사례다. 멧사그룹에서는 매년 1200만t의 목재 기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오스트리아 안드리츠사와 함께 펄프 공장에서 탄소 시범 포집에 나섰다. 산림 산업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수소를 결합시키면 합성 메탄이나 메탄올을 생산, 화석 기반 연료를 대체하는 목재 기반 신규 원료를 만들 수 있다.


목재 펄프로 대체섬유 '쿠우라'를 만드는 멧사그룹 자회사 멧사파이버의 에네코스키 공장 전경. 양산 공장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사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에네코스키=김희정 기자 dontsigh@
펄프 기반 대체섬유 '쿠우라' 샘플을 확인하는 니클라스 폰 바이에르 멧사스프링 CEO/사진=에네코스키=김희정 기자 dontsigh@


EU 순환경제 선두주자 노리는 핀란드


수소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뿐 아니라 비화석 기반 운송 및 모빌리티 솔루션을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화석 기반 화학 물질이나 식품을 생산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다. 인구 561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핀란드는 국가 전역에서 수소 연구를 지속하며 EU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수소를 주축으로 순환경제의 선두주자가 되는 데도 이점이 크다.

마크쿠 키비스토 비즈니스 핀란드(경제고용부 산하) 클린테크산업 책임자는 "핀란드는 수자원(H2O)이 풍부하고 이를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기 요금이 유럽에서 가장 싸다"며 "에너지원이 다양하고 스마트 전력망이 발달돼있는 데다 배터리 핵심소재인 4대 광물을 보유한 광산국가라 탄소 배출 목표를 감안해 EU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알리 할린 VTT 리서치 교수가 자체 개발한 바이오매스 기반(나노 셀룰로오스와 셀룰로오스) 포장재를 선보이고 있다. VTT는 화석 기반 소재와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헬싱키=김희정 기자 dontsigh@


정부-산학연, 지속가능발전 기술 상용화에 '올인'


정부의 명확한 로드맵 아래 산학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니 관련 기술의 상용화도 활발하다. 탄소를 고체 형태로 포집해 배터리 흑연 및 기타 고부가가치 산업용 제품을 만드는 하이카마이트가 대표적이다. 하이카마이트는 9월 코콜라 산업단지에 유럽 최대 무공해 메탄 분리 공장을 개장했다. 열 분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고 전기분해로 수소를 얻을 때보다 에너지도 87%가량 적게 쓴다. 풀가동하면 연간 2000t의 저탄소 수소와 6000t의 고품질 탄소를 생산할 수 있다.

하이카마이트의 핵심 기술은 인근 오울루 대학교의 응용화학 연구가 기반이 됐지만 상용화에는 VTT의 도움이 컸다. 핀란드에선 신기술의 상용화 뒤에 VTT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50여개국에서 온 200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기술 조직으로 VTT 바이오루크키 센터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바이오·순환경제 연구시설로 꼽힌다. 알리 할린 VTT 리서치 교수는 "우리의 역할은 사회와 기업에서 연구기술의 상용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생물을 공기와 전기로 발효시킨 바이오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단백질 식품 솔라푸드. 일본 아지노모토사와 협력해 싱가포르에 먼저 시제품을 선보였다. 솔라푸드 상용화에도 핀란드국립기술연구소 VTT가 일조했다./헬싱키=김희정 기자 donts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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