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삼성의 사과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24.10.14 06:05
#1.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슈퍼전파자 역할을 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단상에 오른 그는 "저 자신이 참담한 심정"이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2. 2020년 5월,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는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하고,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며 "노사문화도 시대의 문화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의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 관계도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3. 2024년 10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부회장은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사과문을 통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엄중한 상황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며 "위기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이 4~5년마다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 사과 이유도 '운영실책에 대한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에 대한 사과'로, 최근엔 '부진한 경영 성과 및 기술경쟁력에 대한 사과'로 다양해졌다.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는게 옳다. 사과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또, 사과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미래에 대한 약속이 동시에 담긴다. 이런 점에서 삼성의 사과는 아쉽지만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이제 개선을 위해 팔을 걷을 때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삼성의 약속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시장은 삼성전자의 '실적 본능'이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삼성의 계획은 곧바로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5만원대로 추락한 삼성전자 주가는 시장의 '불신'을 보여준다.


삼성의 전략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대대적인 투자를 앞세운 '규모의 경제'는 삼성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 공식이었다. 그러나, 비메모리와 메모리는 본질적인 '업의 성격'이 엄연히 달랐다. 고객과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인 비메모리/파운드리 관련 대규모 투자는 큰 부담이 됐다. 삼성전자를 담당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낮은 투자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대한 전략적 수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예스맨'이 아닌 '실력 있는' 인물을 발탁해 맡겨야 한다. 삼성의 회장은 숫자가 아닌 큰 그림을 봐야 하고, 공장 대신 사람을 살펴야 한다.

더 이상의 사과도 없어야 한다. 통렬한 자성(自省)과 자정(自淨)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잦은 반성문 제출은 '패배 의식'을 굳힌다.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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