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를 위한 '빈' 임산부 배려석은 없다. 대중교통에 임산부 배려석이 생긴지 10년이 넘었지만 출퇴근길엔 다른 이들의 차지다.
임산부의 날인 10일 오전 서울 지하철 9호선 여의도~고속터미널 구간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역을 지날 쯤 기자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던 한 60대 여성에게 '이곳이 임산부 배려석인 것을 아나'라고 묻자 그는 "아이고, 미안하다"며 "평소엔 임산부가 오면 비켜줄 생각으로 앉아 있기도 했는데 오늘은 배려석인지도 모르고 앉았다"고 했다.
임신 6개월 차 이슬이씨(34)는 9호선을 타고 서울 당산에서 경기 판교까지 출퇴근한다. 이씨는 "임산부 배려석에 누가 앉아 있으면 부담스러울까봐 임산부 배지도 숨긴다"며 "임산부 배려석 쪽에 서 있으면 어떤 어르신은 '당신 임산부냐'고 묻기도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1월 출산을 앞둔 차씨는 "주말에 남편과 지하철을 탔는데 축구 유니폼을 입은 한 남학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었다"며 "남편이 '죄송한데 아내가 임신 중이라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냐'고 묻자 그 학생이 '운동해서 힘들다. 죄송하다'며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고 했다.
약 3달 전 딸을 출산한 정모씨(33)는 "임신기간에 지하철에서 양보받은 적은 거의 없고 스스로 찾아서 앉았다"며 "누가 앉아 있으면 굳이 민망할까봐 비켜달라고 안 하고 임산부인 티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버스에 비하면 지하철은 양호한 편이다. 차씨는 "버스로 사례를 넓히면 훨씬 무례한 경험이 많다"며 "한번은 저녁 8시쯤 독립문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임산부 배려석에 술에 취한 노인이 앉아서는 '너 임신했냐' '내가 비켜줘야 하냐' '싫다'며 주정을 부리기도 했다"고 했다.
직접 차량을 운전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임산부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임신부 이모 씨(39)는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 임산부 배려석에 가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기엔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차라리 직접 운전해서 다니는 게 속이 편하다"고 했다.
임산부가 아닌 승객이 배려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민원은 서울교통공사에만 매달 400건 이상 접수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접수된 관련 민원은 총 4668건이다.
민원이 와도 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안내방송 외엔 없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민원인이 직접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급 사항이 아니면 안내 방송을 하는 게 최선"이라며 "법적 근거 같은 게 없어서 (자리 양보를)강제하기 어렵다. 민원인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직접 조치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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