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국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1일부터 EU산 브랜디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 주요 조사 대상은 대부분 1700년대 설립된 프랑스의 유명 주류제조업체들이다. 마르텔이 30.6%, 헤네시가 39%, 레미마르탱이 38.1%의 반덤핑 관세를 각각 물게 됐다.
상무부의 반덤핑 조사기간인 지난 2019년 1월~2023년 9월 중 EU산 브랜디 수입량은 중국 전체 브랜디 수입량의 거의 대부분인 97.5%를 차지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중국은 EU산 브랜디 17억4000만달러(약 2.4조원)어치를 수입했다. 이 중 99%가 프랑스산이다.
브랜디는 과일을 발효해 만든 고가의 독주다. 프랑스 코냑 지역 포도로 만든 브랜디인 코냑이 가장 대표적이다. 독주와 고가 사치품을 선호하는 중국이 당연히 주력 시장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올들어 EU와 중국 간 관계가 나빠지며 중국 내 EU산 브랜디 판매량은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 올 1~8월 수입량이 7억9300만달러(약 1조원) 정도로 전년 대비 쪼그라들었다. 이번에 부과된 최대 39%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로 EU산 브랜디의 중국시장 공략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이미 중국 내 유통망을 축소하는 정황이 포착된다.
중국의 보이콧은 모기업에도 직접적 악재가 될 전망이다. 헤네시 모기업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그룹은 올 상반기 와인 및 주류 매출이 전년 대비 12%, 영업이익이 26% 줄었다고 발표하며 "중국 시장 수요 악화가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레미마르탱 모기업 레미쿠앵트로는 2분기 코냑 매출이 전년 대비 12.2% 줄었다. 중국 매출은 오히려 늘어나던 상황이라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중국의 EU산 브랜디 규제는 EU의 중국산 수입 규제에 대한 보복조치로 해석된다.
27개 EU 회원국들은 지난 4일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 부과를 의결했다. 11월부터 시행된다. 중국산 전기차 브랜드들은 최고 35.3%의 추가 고율관세를 물게 됐다. 중국서 생산된 전기차 가격이 당장 30%가량 비싸진다. 유럽 수출길은 사실상 막힐 전망이다.
중국 상무부는 EU의 조사가 시작된 직후 EU의 주력 품목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 등 보복을 예고한 상황이다. 수출 국가지만 세계 최대 시장이기도 한 중국이다. 중국의 보복이 구체화하면서 무역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됐다. 브랜디에 이어 중국 상무부가 조사를 진행 중인 돼지고기와 유제품 관련 제재가 곧바로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은 약 60억달러 정도로 집계되는데, 그 중 절반인 약 30억달러(약 4조1000억원)가량이 EU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돼지고기를 중국에 내다 판 건 약 8억6530만달러(약 1.2조원)어치를 수출한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으로서는 무역 악재를 만난 셈이 됐다.
중국은 특히 돼지고기 수입 규제가 EU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 제품의 상당부분이 살코기 등이 아닌 돼지의 다리나 내장 등 EU 현지서는 상품성이 크지 않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돼지고기와 함께 다음 타깃으로 삼은 게 바로 유제품이다. 지난해 중국은 EU로부터 18억4000만달러(약 2.4조원)어치의 유제품을 수입했는데, 4억6100만달러(약 6200억원)어치를 수출한 아일랜드의 타격이 가장 직접적일 전망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덴마크 등도 영향권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EU에 수출한 전기차는 약 20조원어치다. 여기에 브랜디와 돼지고기, 유제품 등이 더해지며 일단 약 30조원에 달하는 무역전쟁이 벌어지게 됐다. 중국 상무부는 또 브랜디에 대한 관세를 발표하며 EU산 대형 내연기관차에 대해서도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복에 보복이 이어질 경우 무역전쟁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살바토레 바릴라 뉴캐슬대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EU와 중국 간 무역전쟁은 이번에 전기차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2010~2018년 중국산 태양광 반덤핑 조사에서 이미 시작됐다"며 "주류와 돼지고기, 유제품에 대한 중국의 즉각적이고 유효한 보복은 곧바로 개시될 것이며 EU와 중국 간 무역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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