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삼성전자 주식 1억5000만주를 던진 이유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4.10.09 05:30

[오동희의 사견(思見)]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코스피가 전 거래일(2610.38)보다 16.02포인트(0.61%) 내린 2594.36에 거래를 종료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단기간에 급락하면 기술적 반등에 기대서 삼성전자를 살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장기투자를 하는 외국인들은 지금이 이 종목을 계속 들고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외국계 증권사 아시아헤드인 A 임원이 약 한달 전에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매도세가 1주일 정도 지속될 즈음에 한 말이다. 그는 단타가 아닌 수십년간 하나의 우량종목에 투자하는 외국인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 미래성장성이 불투명한 삼성전자를 더 보유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그후에도 삼성전자에 대한 매도공세는 이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9월 3일부터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한 10월 8일까지 21거래일(휴일 제외)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 기간 외국인들은 삼성전자 총 발행주식의 약 2.6%인 1억 5440여만주를 내다팔았다. 10조원 어치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던진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올 들어 8일 현재까지 삼성전자를 6800여만주 내다팔았다.

외국인들이 삼성전자에 대한 매도공세를 이어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성이 낮은 삼성전자를 던지고 더 좋은 주식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 등을 감안하면 이들의 매도공세는 더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TV, 가전 등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부문도 미래 신성장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가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주식은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 가치를 보고 산다. 상대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이 적은 SK하이닉스 주식을 외국인들이 더 늘린 이유다. SK하이닉스에서는 희망을 봤는데,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은 까닭에 두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2017년 8월 23일 삼성전자 뉴스룸에 올라온 HBM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기획 연재 소개 내용이다. 정작 삼성전자는 2022년 HBM 시장이 열렸을 때 미리 준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룸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이 8일 '반성문'에서도 밝혔듯 '경영진'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제대로 준비했던 미래도 투자에 대한 오판으로 '복(福)'을 걷어찬 것이 문제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7년 8월 23일자 삼성전자 뉴스룸을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이끌 메모리 반도체?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노래 구절까지 인용해 가며 HBM2 D램이 AI 시대의 미래 먹거리라고 자랑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17년 테크놀러지 컨퍼런스에서 GPU 테슬라 볼타 V100(V100)을 들고 자랑하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거기에 들어가 있는 HBM2가 '삼성만이 유일하게 생산한 제품'이라는 소개까지 곁들였다.

컴퓨팅 생태계의 판을 바꿀 메모리라며 HBM을 자랑했는데, 정작 2022년에 챗GPT를 기점으로 AI 메모리반도체(HBM) 시장이 열렸을 때 그 자리에 삼성전자는 없었다. 왜일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전적 사업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 따른 사업지원 전략의 부재 탓이다. 기껏 준비해놓고도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래를 걷어찬 전략의 실패이다. 사업화의 프로세스상 어떤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파악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 소재도 따져야 한다.

또 삼성전자는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의 새 역사를 쓰겠다'면서 2012년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Samsung Strategy & Innovation Center)를 설립해 2016년 약 9조원(80억달러)에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을 인수한 후 자율주행시대에 대응하는 전장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꿨지만 지금은 고급 자동차용 스피커 회사로 남아 있다. 샹카르 찬드란·프라니스 호·커티스 사사키 부사장 등 SSIC 몸담았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미 삼성전자를 떠났다. 그 가운데 일부는 LG 쪽으로 자리를 옮겨 미래 준비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혁신적인 사업들에 대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이에 대한 투자를 하기 위해 설립한 SSIC(삼성전략혁신센터)의 X계정(구 트위터) 계정이 2021년 5월 이후 3년간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사진제공=X.
현재 SSIC의 SNS인 X(구 트위터: https://x.com/samsungssic) 계정은 2021년 5월 19일 '스마트워치 혁신의 새 시대'와 관련한 3년 전 글 이후로 아무 업데이트 없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 유튜브 영상도 3~4년전 업데이트 후 중단됐다. 미래를 위해 만든 SSIC의 홈페이지(www.samsung.com/us/ssic)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 현장에서 전략과 혁신을 고민하겠다고 하던 센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없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부실한 미래 준비에 대한 단적인 예일 뿐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4년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타계한 다음날(2020년 10월 26일)의 삼성전자 주가는 6만 400원이었다. 그를 보내고 4년이 지난 후인 8일의 종가는 6만 300원이다. 지난 4년간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는 후퇴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도, 희망적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도처에서 들린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책 '초격차'에는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되어도 그 나뭇잎에 안주해 나비로의 변화를 거부하면 살찐 애벌레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살찐 애벌레는 결국 눈에 잘 띄어 새의 먹이감 밖에 안된다. 살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그 시발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강력한 미래 메시지와 함께 과감한 인적쇄신이다.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가(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의 삼성전자 우호지분을 합치면 20.08%다. 이 회장은 과거부터 지분보다는 주주와 사회로부터의 인정받는 경영자로 남기를 원했다.

팔만큼 판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이 여전히 50%를 넘는다. 이들은 삼성전자 주가 하락을 마냥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가 변하지 않으면 과거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고생한 것처럼 또 다시 벌처펀드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420만명의 개인투자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를 부품회사(DS부문)와 세트회사(DX부문) 둘로 나누든, 제품별 회사(반도체, 휴대폰, 가전)로 나누든 근본부터 뜯어보고 각자도생의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삼성전자에서 30~40년간 일해온 전직 최고경영자들이 후배들을 위해 하는 눈물어린 고언을 기자가 대신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변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조만간 사라질 수도 있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말처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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