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변호사 시장으로 본 전문직 공급의 문제

머니투데이 양지훈 변호사 | 2024.10.08 02:03
양지훈 변호사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아들의 진로에 대한 고충을 들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입학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한 것까지 부모에게 자랑이던 아들이 이제 '정상적'인 인생경로에서 이탈하려는 것이었다. 로스쿨에 가는 것이 그의 인생에 이익이 될 것인가, 손해가 될 것인가.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다.

나는 2가지를 이야기했다. 그가 로스쿨 3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변호사시험에 곧바로 합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와 로스쿨 졸업 후 적지 않은 나이에 변호사가 돼 자신의 커리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로스쿨제도가 기존 사법시험보다 경쟁률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험과목과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입학생이 대학원 과정에서 중도탈락하며 졸업 후에도 변호사시험에 한 번에 합격하긴 쉽지 않다. 전국 25개 로스쿨 중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은 학교의 경우 입학생 대비 합격자가 정원의 절반에 미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합격률이 높은 학교도 전체 정원의 20~30% 정도는 3년 만에 변호사시험 합격을 못하는 실정이니 일반인의 생각만큼 로스쿨 입학이 쉽게 변호사 자격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변호사가 된 후에 발생한다. 그의 자녀는 이미 30대 중반에 이르렀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원을 졸업한 과거엔 변호사로 곧바로 개업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법률에 따라 6개월의 의무연수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게다가 전문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개업시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1906년 1호 변호사가 한국에 등장한 이래로 등록 변호사가 1만명이 되기까지는 100년이 걸렸다. 그러나 2006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1만번째 변호사에 이어 등록 변호사가 2만명이 되는 데는 8년(2014년), 3만명이 되기까지는 5년(201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문 자격증을 보유하는 것이 일반 노동시장의 근로자 지위보다 선호되는 데는 '노동공급'이 통제되는 제한 경쟁시장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과거보다 거의 2배에 달하는 신규 진입자가 공급되는 법률시장의 경우 자격증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일반 기업체에서 근로자인 변호사를 고용할 때는 적어도 부장 내지 과장 직위를 부여하면서 고용했는데 최근에는 3년의 호봉을 인정해주며 대리 내지 사원급으로 채용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지금 의사들이 정부의 정원확대 정책에 극렬히 저항하는 것은 변호사 공급확대를 좋은 역사적 본보기로 여기는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전문직은 해당 시장의 크기 외에도 직역의 인원을 통제하는 것이 자격증의 가치를 결정짓는 알파요 오메가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의대교육이나 왜곡된 의료보험 같은 문제들이 과연 지금 의정갈등의 근본 원인인가. 이러한 사정을 간파한 시민들은 지금의 의료 보이콧을 응원할 수 없게 됐다.

변호사들은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내변호사'와 '서초동 변호사'로 나뉘어 어떤 커리어가 보다 우위에 있는가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인다. 이러한 변호사 내부 시장을 모르는 신규 진입자에게 변호사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앞서 2가지 우려되는 사실을 전달할 뿐이었다. 다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부모의 마음처럼 살면서 반드시 손해를 보지 않는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인가. 결국 밥벌이의 비애를 견디는 것은 전문직이든 근로자든 똑같은 것이 될 것인데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은 결국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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