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판을 짠 설계자, 고보결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4.10.04 10:33

지고지순한 짝사랑이 아닌 뒤틀린 집착이 불러온 파국

사진=방송 영상 캡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 10월 4일 끝난다. 여러 인물이 떠오르지만, 지금 진한 잔상이 남는 건 이 드라마의 판을 짠 인물인 ‘최나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짝사랑이 집착이 되어, 결국 그 상대를 처절히 망가트려서도 가지겠다는 발상을 하는 인물이라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배우 고보결은 그 쉽지 않은 인물 최나겸을 맡아 단단히 인장을 박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기본 서사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전과자가 된 고정우(변요한)가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 최나겸은 고정우가 살인자로 10년을 복역하는 동안 수시로 면회하며 바깥의 소식을 들려주고, 출소날 유일하게 그를 마중온 인물. 사귀던 여자친구와 절친한 여사친을 죽인 범인으로 몰린 고정우의 곁을 한결같이 지켰다는 점에서 뚝심있는 인물로도 보이나, 잠깐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설정부터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살인자라고 알려진 인물,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블랙아웃’ 때문에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걸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인데 어떤 우정이 흔들리지 않겠느냔 말이다.


최나겸이 고정우에게 단순한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가졌다는 건 처음부터 확실했고, 그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고정우는 줄곧 나겸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이 없음을 인지시켜왔다. 열아홉 살에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존재감 없는 고등학생 최덕미였지만 서른 살이 된 최나겸은 온 세상이 주목하는 스타 배우다. 그럼에도 나겸은 여전히 정우만을 바라본다. 처음엔 나겸이 주인공만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유사시엔 그를 위해 희생하는 순애보 포지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나겸은 출소한 고정우에게 선물한 휴대폰에 몰래 위치 공유 어플을 깔아두고, 인터뷰에선 ‘첫사랑이 있고,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사랑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며 시청자들을 쎄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믿음을 줄 수밖에 없는 지고지순한 눈빛을 믿었는데. 결국,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의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주도하여 현장을 은폐하고 고정우를 살인자로 만든 설계자란 사실이 드러나며 고정우뿐 아니라 우리의 뒤통수를 제대로 가격했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


사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속 고정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 인물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포를 뜨듯 고정우의 고통에 가담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정당화될 순 없지만 자신의 현재와 미래 혹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최나겸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자신만 있겠다는 비뚤어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매장시킨다. 그러면서 자신의 범죄를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모습이라니, 영화 ‘미저리’의 애니 윌크스 뺨치지 않나. 아니, 고등학생 나이에 이미 저런 판을 짜고 10년이나 진행시켰으니 그 집착은 애니 윌크스를 웃돈다고 봐야 한다.



그간 대중에게 고보결의 얼굴은 ‘도깨비’의 반장 김윤아, ‘고백부부’에서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던 민서영, ‘마더’에서 언니와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기자 강현진, ‘하이바이 마마!’의 시크하면서도 내면은 따스했던 오민정, ‘성스러운 아이돌’의 엘리트 매니저 김달이었다. 선한 인상을 지닌 고보결은 크고 작은 변주를 보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따스하면서 내면이 단단한 인물을 주로 선보였다. 2011년 데뷔한 이래 작은 역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고보결 하면 떠오르는 색감이랄까, 이미지를 만들었달까. 그러나 어느 단계에 이르면 배우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구축한 이미지를 깨부숴야 한다. 그걸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넓고 깊은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오래가는 배우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최나겸을 만난 고보결은 기존에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를 산산이 부수는 데 성공한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


비정상적인 집착을 숨긴 채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표현해야 한 만만치 않은 캐릭터, 최나겸. 고보결은 앳된 인상이 짙은 특유의 말간 얼굴로 순정적인 모습을 소화하더니, 결정적인 순간 광기 어린 집착을 유감없이 표출하며 대중의 시선을 붙들었다. 또 다시 정우를 살인자로 몰아넣고자 함정을 파곤 “넌 새장 안에 있으면 돼. 주는 모이 받아먹고, 나만 바라봐. 사랑해”라고 말하는 소름 돋는 모습에서 우리가 알던 반장이나 민서영, 강현진 등의 흔적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이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변영주 감독은 변요한, 고준, 고보결 등 주연배우들의 출세작으로 대표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한 바 있는데, 감독의 소망대로 앞으로 고보결을 이야기할 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빠지지 않는 커리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앞으로 만날 작품에서 고보결이 어떤 느낌의 역할을 맡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 알을 깨고 나오듯 더 넓은 세계로 한 단계 나아간 고보결의 다음 얼굴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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