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매순간이 예술이다

머니투데이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 2024.10.04 02:03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미래는 아주 먼 것이든 바로 코앞의 것이든 우리가 결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혹시 누군가 주변 건축물이나 환경이 지속될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미래'와 관계없는 비시간적 요소에 대한 확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떠올리는 순간, 자신이 존재하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상상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그런데 미래를 향한 앞선 시선은 희망과 불만이 합쳐진 복잡한 감정을 불러오곤 한다.

창조를 업으로 삼는 많은 예술가가 불안에 시달린다면 그들의 운명이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아이디어의 기원이 되는 창조의 시점으로부터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야만 도달하는 목표 사이의 진자운동이 되는데 그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 단계의 모습은 부정당하기 일쑤다. 자신의 구상을 체크하고 그것의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며 현실을 불만으로 채우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이 험난한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작품인데 작가는 세상에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명 작가의 미완성 유고를 마주한 독자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이 미완성인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은 대부분 미발표작이었고 그는 자신의 원고들을 모두 없애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절친이었던 막스 브로트가 결국 그 유언을 무시한 덕분에 세상은 카프카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미완성 유고'는 아니지만 소위 '미완의 결말'을 보이는 그의 적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은 아예 생전에 자신의 '유고'를 미리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 유고'라는 제목으로 결코 이해받지 못할 자신의 작품세계를 부족한 채로나마 보여주려 했다. 그의 대표작인 '특성없는 남자'는 오히려 미완성으로 남긴 채….

끊임없이 높은 단계의 이상을 추구했던 철학자나 학자들도 비슷하다. 독창적인 철학을 가진 학자가 생전에 자신의 이전 주장들을 객관적으로 평론하기도 하며 그것을 바로잡거나 심지어 부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 본인이 부정한다고 이전의 책이나 논의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오류가 증명되는 수리과학의 분야가 아니라면 위대한 학자들의 사유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했는지도 중요한 연구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완성본이라 여기는 작품들도 작가의 시간 속에서는 언젠가 완성될, 변화가능한 한순간의 사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창조의 과정이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예술사에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수십 년, 아니 전 생애를 바친 경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심지어 작가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망 이후에도 150년 가까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

이제까지의 예와는 반대편에 있는 듯하지만 파블로 피카소의 창작방식도 결국은 같은 곳에서 만나고 있다. '피카소의 비밀'(1956년)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피카소가 다양한 색채의 붓놀림을 통해 즉흥적으로 그림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 같기도 하고 소 같기도 한 그 형상이 결국 무엇이 될지 무척 흥미로운 가운데 문득 관객은 그 한순간 한순간의 과정이 이미 멋진 그림임을 깨닫는다. 삶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작가의 빈 종이는 삶으로 채워지는 작품이 된다.

한 작가의 생애로도 모자란 시간이든, 반대로 하나의 섬광보다 짧은 순간이든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매 순간은 충만하다. 매 순간이 모두 예술이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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