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포니, 지속 가능한 밴드 음악 붐의 희망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 2024.09.30 09:11
사진=안테나


일단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하자. 세간에서 통용되는 보이 밴드의 ‘밴드’는 록 밴드의 ‘밴드’와 다르다. 사전을 보면 보이 밴드란 ‘젊은 남성 가수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이다. 그러니까 저 멀리 뉴 키즈 온 더 블록부터 엔 싱크를 지나 원 디렉션과 BTS에 이르는 계보가 바로 보이 밴드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물론 록 밴드의 밴드도 그룹이긴 하되, 보컬리스트로만 구성되진 않았단 점에서 보이 밴드와 차별된다. 즉 록 밴드의 멤버들은 각자 연주할 악기 및 장비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보컬에겐 마이크와 목청이 자신의 장비와 악기인 셈이다. 당연히 이때의 밴드 앞엔 록 대신 다른 장르를 넣어도 성립한다. 이 정도가 ‘밴드’에 대한 토막 상식이다.


안테나 레이블은 드래곤 포니라는 팀을 자신들의 ‘첫 보이 밴드’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처음엔 세븐틴이나 라이즈 같은 보이 밴드일 줄 알았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저들은 보이 밴드가 아닌 그냥 밴드였다. 앞서 말했던 후자, 즉 드래곤 포니를 수식한 밴드는 '록 밴드'의 밴드라는 얘기였고, 실제 드래곤 포니는 록을 구사하는 록 밴드였다.


드래곤 포니는 4인조로 노래하(고 기타도 치)는 안태규, 베이시스트 편성현, 기타리스트 권세혁, 그리고 드러머 고강훈의 라인업이다. 밴드 이름은 안태규가 2000년생 용띠(Dragon)에 나머지 멤버들이 2002년생 말띠(Pony)여서 지었다고 한다(권세혁, 편성현, 고강훈은 고등학교 동창 겸 대학 동문이다.) 지난 9월 26일, 그런 이들이 데뷔작 ‘Pop Up’을 발표했다. 합주와 작업으로 하루 한두 시간밖에 못 자며 만든 다섯 곡 분량 미니 앨범이다.


사진=안테나


이름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들 음악에선 분명 이매진 드래곤스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고, ‘Traffic Jam’ 같은 곡에선 콜드플레이 냄새도 맡을 수 있다(안태규가 부른 ‘Yellow’의 쇼츠 영상이나 권세혁이 “콜드플레이가 우리의 롤 모델”이라고 말한 걸 감안해 볼 때 이 연관성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또 상쾌 통쾌한 ‘Pop Up’의 뮤직비디오에서 안태규가 위저(Weezer)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걸 보면 이들에게선 파워팝 식 멜로디도 놓치지 않으리란 의지도 엿보인다. 이처럼 드래곤 포니는 자신들의 MZ 세대를 넘어 영미권을 포함한 록 음악 침공을 정통으로 맞아들였던 엑스 세대 음악 팬들까지 포섭할 수 있을, 뉴진스와는 또 다른 차원의 뉴트로 저력을 갖추고 있다.


유희열이 두 곡에서 힘을 보탠 가사는 개인 차원의 사랑 이야기, 세대 차원의 외침, 사회 차원의 일갈을 고루 품었다. 그리고 밴드는 기교와 감성을 모두 갖춘 안태규의 노래, ‘꼬리를 무는 뱀’에서 슬래핑 연주로 존재를 부각하는 편성현의 순발력, ‘Pity Punk’에서 돋보인 고강훈의 시원한 필인(fill-in), 별빛 같은 톤으로 ‘모스 부호’를 이끌다 ‘Pity Punk’ 같은 곡에선 코러스 사이에 은밀한 하드록 리프를 꽂아 넣는 권세혁의 감각으로 그 메시지들을 무리 없이 듣는 이들에게 전한다.



또 하나 앨범에서 곡의 배치는 은근히 중요한데, 이유는 곡을 어떻게 배열하느냐로 듣는 사람의 집중력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곡들이 쉬지 않고 달리면 피로감을 주고, 반대로 너무 늘어지면 지루할 수 있는 것이다. 퐁당퐁당 완급을 의식한 ‘Pop Up’의 곡 배치는 그런 면에서 영리하다. 아울러 그 해체와 조합의 역동성은 개별 곡들에서도 유효해, 저마다 갖춘 바이브 아래서 예외 없이 작렬한다. 특히 한 발만 삐끗하면 산만해질 수 있는 ‘꼬리를 무는 뱀’ 같은 곡에서 멤버들이 어떤 식으로 질서를 구축해 내는지 보라.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리는 것과 어떤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통로가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면, 드래곤 포니의 데뷔 앨범은 그 기능에 완벽히 부합한다.


사진=안테나


바야흐로 밴드 음악이 바람을 타는 요즘이다. 이는 드래곤 포니가 데뷔 미션으로 내건 ‘SNS 팔로워 2만 명’을 넘기고 단독 공연 500명을 동원해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청년들은 밴드를 둘러싼 낭만이 좋아서, 또 어떤 이들은 밴드가 주선하는 사람 대 사람으로의 결속에 반해 악기를 든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BTS 같은 보이 밴드와 드래곤 포니 같은 보이 록 밴드의 공존이다. 춤/노래로 펼쳐내는 음악과 연주/노래로 펼쳐내는 음악의 상생은 곧 장르의 신진대사로 직행한다. 그 장르란 다름 아닌 ‘케이팝’으로 통용되는 범주다.


세계적인 팝 그룹인 아바의 비요른 울바에우스는 “팝 음악은 오늘은 여기 있다가도 내일이면 사라져 버린다”라고 했다. 거대한 동시대 유행을 이끈 만큼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얘기겠다. 케이팝이 그리 되지 않으려면 보다 다양한 형식에 문을 열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밴드 음악의 붐이 붐으로만 그칠 게 아니라 더 양성되고 권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심지어 드래곤 포니 멤버들은 모두가 작사, 작곡, 편곡에 프로듀싱 능력까지 지녔다. 퍼포먼스와 멤버 구성은 물론 창작과 조율까지 온통 ‘케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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