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주장이 사실을 넘어섰을 때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 2024.09.30 04: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달리기 인구 '1000만' 시대. 2030세대가 도로 위에 쏟아져 나온다. 10년 전만 해도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대개 40대 이상이었다. 굵직한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참가 신청 작성을 위한 '클릭 전쟁'이 됐을 정도다.

마라톤 고수에서부터 '런린이(달리기 초보)'까지 유튜브 채널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많은 경우 기록 단축과 올바른 달리기 자세, 러닝화 얘기다. 고수는 지식 나눔 내지 지도, 런린이는 자기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성장을 공유한다.

초보에서부터 서브3(42.195km 풀코스를 3시간 이내 주파하는 달림이.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극강의 고수로 통한다)를 아우르는 얘깃거리가 있다. 바로 미드풋 주법이다.

착지할 때 발바닥 전체가 한 번에 바닥에 닿는 주법이다. 10여년 전부터 달림이들에게 '화두'인데, 뒤꿈치부터 닿는 리어풋을 포함해 '~~풋', 이런 개념조차 없던 대다수 러너들 귀를 솔깃하게 했다.

미드풋 주법은 명실상부 부상 없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주법이라는 주장이 대세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이 유튜브에서 미드풋 주법을 저격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황 감독은 걷든 뛰든,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게 순리라고 했다. 달리기 속도가 붙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드풋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지로 동작을 만들었다가는 부상을 피할 수 없다고 직격했다. 자기 주변에 미드풋 주법 때문에 부상에 시달리는 현역 선수가 넘친다는 말도 했다. 손기정 이후 최초의 한국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커리어에, 엘리트 선수들을 키우는 현직 지도자로서 '임상'이 더해지니 그 말의 영향력이란 비교할 데가 없었다.

황 감독은 많은 마라톤 지도자들이 그 영상을 보며 '속이 시원하다'며 고맙다는 연락을 해왔다는 후속 영상도 내보냈다. 이 지도자들조차 미드풋이 진리인지 긴가민가하던 차였다고.


기자도 가슴이 뻥 뚫린 이들 중 한 명이다. 나름 열몇 차례 풀코스를 소화하며 러닝에 일가견이 있다고 여겨오던 차에 미드풋을 흉내 내다 남은 건 왼쪽 다리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뿐이었으니, 황 감독 영상에서 위로마저 얻을 수 있었다.

황 감독 일갈 이후 그에 대적할 만한 논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은 몇 년 건 한 역사 인플루언서가 리듬 앤 블루스(R&B)를 재즈의 르네상스로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유명 음악평론가로부터 혼이 났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R&B는 미국 남부 블루스가 북부 시카고에 진출한 뒤 일렉트릭과 된 장르이며 나중에 로큰롤로 발전했다는 게 평론가의 설명이었다. 이 일로 이 인플루언서는 한동안 외부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바로 잡아야 할 일이 어디 이것뿐일까. 유튜브 등 뉴미디어는 '사실'과 '주장'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진짜 전문가들이 잠자코 있는 사이 비전문가들이 득세한다.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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