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이 분열해야 내가 산다"…중국의 필리핀 고립작전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 2024.09.27 08:02

아세안 10개국 개별공략, 약화하는 대중국 포위…
미국 "통일전선 형성 막는 분열전략 성공했다 봐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9일(현지시각)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또 럼 베트남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서기장의 환영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4.08.20 /AFPBBNews=뉴스1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이 대표적 친미 국가인 필리핀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포위망을 해체하려 한다는 분석이 중국 안팎에서 제기된다. 중국이 필리핀을 제외한 국가들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닐라 소재 싱크탱크 아시아태평양진보경로재단 루시오 피트로 연구원은 26일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베이징(중국 지도부)은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활용해 필리핀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며 "중국은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 필리핀에 대한 지역적 지원을 약화시키고 필리핀을 도발자로 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9단선이라는 해상국경을 주장하며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자원 측면은 물론 함대를 대양으로 진출시키는 경로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도 중국 정부로서는 9단선을 포기하기 어렵다.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이 중국과 이 9단선을 바로 맞대고 있다.

이 중 대만을 제외하면 중국에 가장 강경하게 맞서는 아세안 국가가 바로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지도하에 중국의 압박이 강화될수록 미국과 전면적으로 결합하는 한편, 해상분쟁에 대해서도 매번 강력한 물리적 대응에 나섰다. 실베르토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은 "중국과 영토 분쟁은 존재적 문제"라며 강경 대응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세안은 1967년 8월 결성됐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국으로 출발했고 이후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순으로 5개국이 가입했다. 처음엔 중국과 베트남 등 공산국가들을 견제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출범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자국 문제로 대외 팽창은 언감생심이었다.

아세안이 대중국 견제라는 본령에 충실하기 시작한 건 중국의 개혁개방 후 동남아 패권 압박이 공공연해지면서다. 압박이 커질수록 아세안은 미국과 더 밀착하며 중국을 견제했다. 지난해 9월 아세안 탄생 이후 최초로 이뤄진 남중국해 해군 연합훈련은 아세안의 위기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훈련은 중국이 아세안 포위망을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풀어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였다.

미국과 필리핀 외무·국방 장관들이 30일 퀘존시티 캠프 아기날도에서 개최되는 양국간 '2+2' 회의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엔리케 마날로 필리핀 외무,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 순이다. 2024.07.30 /AFPBBNews=뉴스1
아세안 국가 중 가장 미국과 가까우면서도 약한 연결고리 격인 필리핀이 타깃이 됐다. 최우선 방법론은 다른 아세안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다. 리창 중국 국무원총리는 지난 6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4월에, 베트남의 또 럼 신임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은 8월에 각각 첫 해외 순방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또 라오스와 베트남, 브루나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7개국 외무장관이 지난 4월 이후 순차적으로 중국에 초대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총책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올해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를 방문했다. 방문지역만 놓고 보면 필리핀을 제외한 아세안 국가들에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필리핀에 대해서는 실질적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긴장완화 합의'는 체결 직후부터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양국은 지난 8월에만 5차례 선박충돌 등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갈등을 빚었다. 양국 간 영토분쟁의 핵심인 사비나암초(중국명 셴빈자오)와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 스플래틀리 군도 등을 둘러싸고 물대포 공격은 일상이다.

필리핀 외 국가들과는 구체적인 협력 결과물이 도출된다. 중국은 미국의 주요 비(非)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인 태국과 지난달 합동 공군훈련을 실시했고 이달 초엔 싱가포르와도 해상합동훈련을 진행했다. 인도네시아와는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열린 첫 '2+2 합동 외교 및 국방대화'에서 2015년 해상영토 분쟁으로 중단된 양자 군사훈련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해양 경비선과 필리핀 해경선이 26일 (현지시간)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사비나 숄에서 지나 가고 있다. 2024.08.27 /AFPBBNews=뉴스1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대륙 국가들은 미국보다 중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9단선의 실질적 위협을 받지 않는 아세안 국가들은 이미 친중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아세안은 중국 입장에선 포위망이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들 입장에선 중국과의 사이에 중요한 완충지대다. 아세안의 대열이 흐트러지는 건 적색경보나 다름없다.

미국국방대학 국가전략연구소 앤드류 태퍼 연구원은 SCMP에 "중국의 분열 전략의 목표가 아세안이 중국에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면, 중국은 이 측면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칼 세이어 명예교수 역시 "지난 몇 년간 아세안은 남중국해에서 커지는 중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단결해 대응한 적이 거의 없으며 집단행동 여지는 점점 더 작아진다"며 "이런 흐름은 중국이 분열시켜 정복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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