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과 울산 귀신고래

머니투데이 권기균 과학관과문화 대표·공학박사 | 2024.09.27 02:01
(사)과학관과문화 대표, 공학박사 권기균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2층에는 매우 특별한 전시실이 있다. 이 전시실의 이름은 '뼈전시실'(Bone Hall)이다. 이곳은 300여종의 척추동물 뼈만 추려서 원래 모양대로 조립해놓았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큰 규모다.

이 뼈전시실의 전시물 중 덩치가 가장 큰 것은 당연히 고래다. 이곳에는 90여종의 고래 중 돌고래 3종과 고래 1종의 골격만 전시돼 있다. 고래는 흥미로운 생물이다. 고래는 잠을 잘 때 뇌의 절반만 쉬고 나머지 절반은 깨어 있어 숨을 쉬며 주변을 감시한다. 또 고래는 에코로케이션(ecolocation)의 챔피언이다. 자신이 발사한 초음파가 어떤 물체에 닿아 되돌아오는 것을 잡아내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다. 말하자면 몸에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고래의 배설물은 바다의 비료 역할을 해 파이토플랑크톤의 성장을 돕고 이는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와 이빨고래 두 종류로 나눈다. 수염고래에겐 입안에 케라틴으로 된 수염들이, 이빨고래에겐 이빨들이 있다. 고래는 약 5000만년 전 네 발 달린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했다. 앞다리는 앞지느러미로 바뀌었고 뒷다리는 골반이 퇴화해 살에 묻혀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뼈만 추리면 흔적만 남은 부유뼈(floating bones)가 보인다. 목뼈들은 짧아져서 한데 모여 있다. 또 분수공 역할을 하기 위해 콧구멍이 위쪽에 위치하도록 머리뼈는 뒤쪽으로 당겨졌다.

이 전시실에 전시된 고래는 귀신고래다. 길이는 12m. 영어로는 그레이웨일(Gray Whale), 우리말로는 쇠고래, 회색등고래, 또는 귀신고래라고 부른다. 학술적으로는 쇠고래과에 포함된 유일한 종이다. 이 수염고래의 먹이는 크릴새우 같은 갑각류와 작은 물고기 등이다. 체중은 45톤까지 자란다. 귀신고래는 북미 해안을 따라 서식하는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와 아시아 동쪽 해안을 따라 서식하는 두 종류의 개체군이 있다. 이 귀신고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있다. 영화 '빅 미라클'(Big Miracle)이다. 1988년 북극 배로곶(cape) 인근 보퍼트해의 유빙 아래에 갇힌 귀신고래 3마리를 구하기 위해 적대적이던 그린피스와 석유시추업체, 냉전시기의 미국과 소련이 합심해서 귀신고래를 구출한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뼈전시실의 패널엔 이 귀신고래 표본이 한국 해안에서 온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전시된 귀신고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고래가 틀림없다.


1912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는 한국의 울산 앞바다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귀신고래를 연구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귀신고래 2마리를 데리고 갔다. 이 중 한 마리는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에, 그리고 하나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표본이 그때 앤드루스가 기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울산 앞바다의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와 회유로가 다른 고래라는 사실을 밝히고 '코리아(KOREA)의 귀신고래'란 이름을 붙여줬다. 사진도 찍었다. 그래서 울산 장생포의 고래문화마을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졌다.

현재 많은 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1986년부터 포경은 금지됐지만 플라스틱 오염, 선박과의 충돌, 고래가 그물에 걸려 익사하는 경우 등 위협요인이 너무도 많다. 고래의 기대수명이 1980년대 쉰네 살에서 현재는 열네 살로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울산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이 있다. 올해는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장생포의 꿈! 울산의 희망!'을 주제로 고래축제가 열린다. 고래축제를 통해 축제도 즐기면서 많은 사람이 고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권기균 과학관과문화 대표·공학박사)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뼈전시실'(Bone Hall)에 전시 중인 귀신고래 표본.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가 1912년 한국 울산에서 잡아 데라고 간 2마리 중 1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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