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연휴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후배부부를 10여년 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학 학사를 마치고 유학 가서 미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자식 둘은 이미 장성해 사회생활을 하는데 둘 다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고 한다.
후배부부는 자식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한편으론 미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빅테크와 금융권에 취업한 후 뛰쳐나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도 있어 보였다. 미국 사회를 잘 알진 못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선택이고 당장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훨씬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미국 명문대생들이 빅테크 등에 취업한 경우와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을 때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스타트업 쪽이 경제적 보상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게다가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치가 능력을 성장시키고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서 또 다른 기회를 갖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일수록 안정적인 직장에 머물지 않고 스타트업을 하는 추세다. 후배부부의 자제들은 사실 자연스러운 선택을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명절연휴 직후에 참석한 세미나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 경제단체가 주최한 '기업가정신 어떻게 재점화시킬까?'라는 주제의 세미나로 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타일러 라쉬 웨이브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발제를 맡고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함께 패널토크를 하는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기업가정신 문화와 사후단속(네거티브) 규제환경 및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기업가정신은 글로벌 경쟁력의 척도로 이의 확산을 위해서는 튼튼한 스타트업 생태계와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은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가 여럿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전 세계 스타트업과 인재를 빨아들인다. 우리도 서울이 스타트업하기 좋은 10대도시에 포함되고 다양한 창업지원 정책 등은 긍정적이지만 촘촘한 규제와 위험회피 문화가 기업가정신 확산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에서 커다란 간극이 있는데 이 토론에 참석한 교수님의 사례에서 핵심적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의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항의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타트업 창업을 하는 것이 여전히 부모 입장에선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일로 인식되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뛰어난 인재일수록 안정적인 직업·직장을 선호하는 위험회피 성향 사회다. 이런 환경에선 기업가정신 확산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이야말로 불확실한 자녀들의 미래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이다. 기업가정신은 '앙트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의 번역어로 창업가정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 정확한 의미로는 문제해결능력에 가깝다. 어떤 문제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이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바로 기업가정신이며 이런 능력을 가진 창업가들이 가장 큰 성취를 이루도록 투자하고 그 성과를 나누는 시스템이 스타트업 생태계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전체 직업 중 절반이 지난 30년 내에 없어졌고 새로 생긴 직업이 그 절반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다가오는 AI 시대를 감안하면 우리 학생들이 활약할 미래에는 현재의 기능적 교육으로 가능한 직업이 절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정답을 가르치고 외우는 능력은 불필요하다.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문제해결능력, 즉 기업가정신이야말로 미래세대에게 남겨줘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가치다. (최성진 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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