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깨진 유리창의 법칙

머니투데이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 2024.09.26 02:03
전 BNK자산운용 대표

두 동네의 구석진 골목에 자동차를 세워뒀다. 두 동네 모두 보닛만 살짝 열어뒀지만 한 동네 자동차는 유리창이 깨졌다. 과연 1주일 후 이 자동차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놀랍게도 깨진 유리창의 자동차는 거의 폐차 수준으로 망가졌지만 다른 동네 자동차는 멀쩡했다. 이 실험을 토대로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을 주장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결국 지역 전체로 범죄가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도시가 뉴욕이다. 뉴욕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깨진 유리창 법칙'을 확신하고 더럽기로 악명 높던 지하철의 낙서 지우기 운동을 시작한다. 결국 범죄율은 1년 후 30~40% 떨어지고 3년 후엔 80% 낮아졌다.

이제 뉴욕은 세계 어느 도시도 따라오지 못하는 슈퍼스타 도시가 됐다.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을 설파한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전 세계 슈퍼스타 도시 중 부동의 1위로 뉴욕을 꼽았다. 경제, 특히 금융과 미디어, 첨단기술 등에서 독보적이란다. 다음이 런던이고 3위가 도쿄다. 놀랍게도 서울은 8위다.

인류의 역사는 도시문명의 역사다. 기원전 500년 무렵 아테네는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지중해를 경영했고 로마는 인구 100만명의 세계 최대 도시로 광대한 제국을 지배했다.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문화, 경제, 정치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런 슈퍼스타 대도시는 구조적으로 이중성을 안고 있다. 가장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도시면서 경제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도시다. 맨해튼의 소득 상위 5%가 가장 가난한 가구 20%보다 88배나 많은 부를 소유했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맨해튼의 1베드룸 아파트의 가격이 100만달러 이상이니 시골인 미시시피에 가면 최소 10채는 살 수 있다. 세계 8위 슈퍼스타 도시 서울, 특히 강남에 대한 옹호론도 있다. 전 세계에서 업무지구와 상업지구, 거주지구가 한곳에 모여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 서울 강남이란다. 그래서 비싸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상승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빌라 전세사기가 세입자들의 아파트 전세로 전환을 촉발했고 이는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집값을 밀어올렸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빌라 전세시장이 초토화되고 서울의 전셋값이 지난해 5월 이후 70주 연속 상승했으니 그럴듯한 이야기다. 게다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시장의 경색으로 2022년부터 아파트 착공건수가 크게 줄어 2025년 하반기부터는 공급물량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까지 가격상승을 부추긴 듯하다.

플로리다 교수는 "성장하는 도시는 계층분리로 고통받고 쇠퇴하는 도시는 경기침체로 고통받는다"고 했다. 문제는 계층이 장소(거주지)와 결합해 사회·경제적 이점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면 불평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의 발전이 문명의 발전이었다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불평등을 애써 외면하지는 말자. 깨진 유리창을 계속 방치하면 그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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