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큰 나무를 옮겨 심고 나면 막걸리를 준비해서 상처 난 뿌리에 한가득 뿌려준다. 나무를 옮기고 막걸리를 주는 것은 토양미생물(土壤微生物·soil microbe)들이 막걸리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그런다. 유익한 미생물의 번식이 식물의 뿌리건강에 중요해서 옮기느라 생긴 생채기와 곪은 뿌리를 낫도록 하는 일도 한다.
기름진 흙에는 수많은 토양미생물이 살아서 물에 녹지 않는 무기영양소(minerals)를 잘 녹게 해 양분흡수를 거들어주니 토양미생물이 없거나 적은 흙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거꾸로 식물의 뿌리는 여러 가지 유기영양소를 토양미생물에게 준다. 그래서 뿌리 근방에는 늘 50%나 더 많은 토양미생물(세균)이 꾄다. 이렇게 식물과 토양 미생물들은 '주고받기'(공생·共生)를 하니 막걸리가 새 뿌리를 내리는데 어떤 일을 하는가를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흙의 유기물을 분해하거나 토양미생물이 죽어 분해되면서 내는 냄새를 지오스민(geosmin·earth smell)이라고 한다. 지오스민은 구수한 냄새나 역겨운 물비린내, 소나기가 온 뒤 풍기는 흙냄새 따위를 말한다. 그래서 흙에 유기물이 적으면 토양세균이 살지 못하기에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거름이 많아 땅심(지심·地心)을 돋운 흙이라야 냉이 냄새랄까, 인삼의 사포닌(saponin) 같은 흙 향기를 풍긴다.
그리고 어린이는 흙을 만지면서 자라야지 아토피(atopy) 등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 즉 아이들은 너무 깨끗이 키우면 피부병이나 소아마비 등 여러 가지 병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자식을 많이 낳아라" "자식을 더럽게 키워라!"가 내 강의의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다음은 '페니실린'(penicillin)을 발견한 영국 알렉산더 플레밍의 이야기다. 1928년 9월23일 한 달 넘는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플레밍은 "이것 참 재미있네!"라고 탄성을 내질렀다. 포도상구균(葡萄狀球菌·Staphylococcus sp.·그리스어로 'staphyle'은 '포도'를, 'coccus'는 '둥그스름함'을 뜻함)과 같은 고름세균(화농균·化膿菌)을 실험하던 배양접시 하나가 '사고'를 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휴가 가느라 아무렇게나 쓱~ 밀쳐둔 뚜껑 열린 화농균 배양접시에 다른 층에서 키우던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의 홀씨(포자)가 바람을 타고 사뿐히 날아와 내려앉은 것이다. 세균끼리는 물론이고 세균과 곰팡이, 곰팡이와 곰팡이 사이에는 죽살이치는(모질게) 다툼이 있는지라 문제의 배양접시에 날아든 푸른곰팡이는 화농균을 몽땅 죽였다. 즉 푸른곰팡이가 분비한 항생제(抗生劑·antibiotics)인 페니실린이 화농균을 못 자라게 한 것. 이렇게 그 유명한 항생제 페니실린이 발견됐다.
이런 위대한 과학업적들은 '우연성'(偶然性·by chance)이 지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닳고 닳은 영혼의 눈을 가졌고, 또 그들은 과감한 도전정신과 엉뚱한 생각, 무서운 집념과 과단성을 지녔다. 무엇보다 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더 흘릴 땀방울이 없을 때까지 파고드는 옹고집에, 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질풍경초(疾風勁草)처럼, 즉 아무리 어려운 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기개가 있다. 한마디로 '독종'(毒種)들이다.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의학적 성과는 항생제의 발견이라고 했다. 그런데 항생제는 흙 속의 스트렙토미세스 안티비오티쿠스(Streptomyces antibioticus)라고 하는 방선균(放線菌) 같은 토양세균에서 악티노마이신(actinomycin) 항생제를,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를 뽑는다.
항생제는 다른 미생물의 세포벽을 합성하는 효소의 기능을 억제하거나 세포벽을 파괴하는 효소의 기능을 항진시키고, 또 핵산 복제를 저해하거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해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를 죽인다.(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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