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사람들 좀 그만 봐" 핀잔 들어도…실종 경찰의 '보람찬' 직업병

머니투데이 오석진 기자, 김미루 기자 | 2024.09.19 07:30

[2024 실종리포트(하)-다섯 가족 이야기] (종합-②)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은 지난 4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실종 가족들을 만났다. '2024 실종리포트-다섯가족 이야기'는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자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한 명이라도 더 가족 품으로"…나는 '실종 경찰' 입니다




서울경찰청 폭력계 소속 함명호 팀장(오른쪽)과 전세희 경사(왼쪽). / 사진=최지은 기자
"실종 가족분들께서 감격스러워하시는 것을 보면 저희도 보람을 느껴요. 다음 사건을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죠. " - 서울경찰청 폭력계 함명호 팀장(경감)

"이전에는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살짝 지쳤던 것 같아요. (실종 업무를 맡고) 일반 분들도 이렇게 도와드릴 수 있구나, 기뻤습니다.(웃음)" - 서울경찰청 폭력계 전세희 경사

"저도 할머니 손에서 컸거든요. 실종 어르신들을 보호자께 인계할 때 가끔 울컥하기도 해요." - 강서경찰서 실종팀 고병철 경위

"청소년들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보람을 느끼죠." - 구로경찰서 실종팀 김성열 경사

"쉬운 업무는 아니지만 실종팀에 온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 서울 방배경찰서 실종팀 정우재 경장

서울경찰청 및 일선서에서 활약하는 '실종경찰'들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열악한 수사 환경에서도 △7번 실종된 치매 어르신을 찾아내고 △어릴 적 생이별한 남매를 61년 만에 만나게 하고 △2년 전 실종된 동생의 생사를 알리는 등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빛나는 성과를 냈다.

( 관련기사 ☞ 7번 사라진 아내…"기운 다할 때까지 지켜줄게" 팔순 남편 이야기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시절, 생이별한 여동생…61년만에 다시 만났다
'2년 전 실종' 동생과 짧은 재회…서툴지만 진심 담긴 형의 한마디 )

◇'빛 안 나는' 업무…사람 없고 일 몰리지만

강서경찰서 실종팀 소속 고병철 경위. / 사진=최지은 기자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 신고 접수 건수는 12만3592건이다. 전국 실종수사팀 경찰은 780명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실종수사관이 1명이 휴일 없이 이틀에 한 사건을 다뤄야 한다.

정우재 경장은 사실상 '1인 실종팀'이다. CCTV(폐쇄회로TV) 탐문부터 필요 시 압수영장 신청까지 혼자 한다. 가출 청소년들 때문에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CCTV만 본 적도 있다. 치매 어르신을 위한 '포르신'이라는 형광 배지도 자체 제작했다.

동시에 여러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식은땀이 난다. 정 경장은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자살·강력범죄 위험이 있는 대상자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우리 가족을 먼저 안 찾아주냐'고 화 내시는 분들도 계신다"며 "마음 한켠으로 죄송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방배경찰서 실종팀 소속 정우재 경정. / 사진 제공=방배경찰서
고병철 경위는 "당직을 하면 실종신고가 15~20건이 접수된다"고 말했다. 총 3명 근무로 1명은 사무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2명이 팀으로 현장을 나가는데 접수된 사건을 다 다루려면 시간이 없다.

고 경위가 개인 시간 실종자 수색에 나서는 이유다. 당직 근무 후엔 오전 9시에 퇴근하고 실종자를 계속 찾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돌아다니다 2년 실종된 동생 사건을 해결했다.

서울경찰청 실종수사팀 소속 함명호 팀장과 전세희 경사는 1960년대 헤어진 동생을 찾아달라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3년을 썼다. 함명호 팀장은 "접수는 2020년에 됐지만 사건 자체는 1960년대에 있던 일"이라며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세희 경사는 "서울기록원에 공문을 보내 사라진 아동보호시설의 입소자 기록을 받았다"며 "PDF 파일 용량이 7기가였다. 보는 데만 며칠이 걸렸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실종 경찰을 움직이는 힘…사명감과 보람

서울경찰청 폭력계 소속 전세희 경사. / 사진=최지은 기자
그러면서도 이들 수사관들은 사명감과 보람으로 즐겁게 일한다고 입을 모았다. 함명호 팀장은 "실종 아동을 보면 아이를 키웠던 생각도 나고 어르신을 보면 부모님 생각도 난다"고 말했다. 이어 "내 가족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한다"며 "나도 부모님의 자식이자 내 아이의 아빠"라고 했다.

김성열 경사는 길을 다니며 노인과 청소년들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직업병이 생겼다. 친구들이 핀잔을 주지만 실종 경찰 일에 힘쓰는 이유는 '보람'이다.

그는 "아무래도 실종자 가족분들이 감사하다고 하실 때 제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음료수 같은 것을 가져오시는데 안 된다고 실랑이를 할 때도 있고 가출 청소년 부모님께서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한다"며 "이런 사건들을 해결한 추억들이 힘이 된다"고 했다.

고병철 경위는 "실종 어르신들을 찾으면 할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며 "이 일에 애정이 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형사 일을 할 때 느꼈던 보람과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라고 설명했다.


정우재 경장은 당초 다른 수사팀에 있다가 실종팀으로 지원해 왔다. 정 경장은 "전라도에서 실종된 아이를 우리 관내에서 찾았을 때 가족들이 장문의 감사 글을 올려주셨다. 그런 글과 말이 너무 감사하다"며 "그런 인사를 들으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




또 다시 추석, 그리움과 마주한 실종 가족들…"우리에게 가족은"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실종 가족을 만나는 기적이 이뤄지면… 그 때부터 또 다른 고비를 넘어야 할 때가 있죠."

지난 5월 서울 영등포구 실종아동찾기협회 사무실. 협회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꿈에 그리던 가족과 만나는 기적의 순간도 잠시, '날 버린 건가요' 날 선 물음에 끈질지게 '답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은 지난 4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실종 가족들을 만났다. '2024 실종리포트-다섯가족 이야기'는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자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형 김윤수씨(46·가명)는 신고한 지 1년 9개월 만에 영등포역 고가도로 아래에서 동생을 만났다. 집에 안 간다는 동생에게 형은 "너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진=최지은 기자

◇실종 가족들과 함께 쓴 '2024 실종리포트-다섯 가족 이야기'

1994년 4월 하나뿐인 딸이 하교 후 사라졌다. 서기원씨(61)는 또 다른 실종을 막기 위해 50여개 법 개정을 끌어냈다. 아버지로서 '못 해준 것'만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사진=이강준 기자
수연씨(43)는 19년째 할머니를 찾고 있다. 그의 사랑으로 수연씨가 24살 청년으로 자랐을 때 세월은 할머니에게 인지 기능을 앗아갔다. 2005년 6월 시계방에 간다던 할머니가 사라졌다. 수연씨는 할머니를 찾아 1년간 무료 급식소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추석이 다가오니 더 먹먹한 마음이 든다.

서기원씨(61)는 30년 전 사업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젊은 아버지였다. 1994년 4월 하나뿐인 10살 딸이 하교 후 사라졌다. 영안실, 윤락가까지 뒤졌지만 딸은 없었다. 원망도 했지만 또 다른 실종을 막기 위해 50여개 법 개정을 끌어냈다. 추석은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볼 예정이다.

자신을 아빠로 부르는 부인과 사는 김화선씨(86)는 7번 넘게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2020년 부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친정아버지가 날 많이 아껴요. 나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 하며 해맑다. 젊은 시절 추억은 오늘날 노부부의 힘이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의 1960년대, 8살 된 장남 종석씨는 가족들과 헤어졌다. 삼남매 중 둘째 종순씨는 6살 때 이모가 보낸 부잣집에서 식모살이하다 쫓겨났다. 강서구와 마포구에 살던 남매가 다시 보는 데 61년이 걸렸다. 재회 후 두 번째 추석을 맞지만 막내 종자씨 걱정에 마음이 아프다.

"동생 분 찾았습니다." "동생께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경찰 전화를 받은 형 김윤수씨(46·가명)는 신고한 지 1년 9개월 만에 영등포역 고가도로 아래에서 동생을 만났다. 집에 안 간다는 동생에게 형은 "너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수연씨(43)는 19년째 할머니를 찾고 있다. 수연씨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다. /사진=김지은 기자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이란

자신을 아빠로 부르는 부인과 사는 김화선씨(86)는 벌써 7번째 경찰에 아내 실종 신고를 했다.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사랑을 주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사진=최지은 기자
이들의 애끓는 시간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아본다. 첫 손녀 수연씨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그에게 할머니는 또 다른 엄마고 아빠다. 고단한 하루 끝에 언제나 그렇듯 가족이 있었다. 매일 아침 냉장고에 있는 콩 우유도, 퇴근 후 식탁 위에 차려진 고봉밥도 할머니가 준 사랑이었다.

아버지 서기원씨에게 외동딸 희영이는 아무리 자랐어도 자신이 영원히 '책임질 아기'다. 초교 4학년 희영이 시험지에 비가 내려도 진로까지 평생을 뒷바라지할 생각이었다. 희영이가 사라진 지 30년간 또 딸을 위해 실종 관련 협회 일을 한다. 아버지로서 '못 해준 것'만 생각 나 가슴 한 켠이 시리다.

남편 김화선씨는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사랑을 주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부인은 어디서든 손을 잡아주는 남편 김씨를 아빠라고 생각한다. 노인복지시설 입소를 제안하는 주변인에 그는 "죽어도 싫다"며 "부인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고 한다. 아내는 수줍게 웃는다.

오빠 종석씨와 동생 종순씨에게 가족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헤어진 지 61년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짙어졌다. 동생 종순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까지 봤지만 마음 한켠에 늘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윤수씨는 2살 터울 남동생 연수씨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형제의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해외에 거처를 마련해 함께 살지 않았다. 윤수씨는 결혼 후에도 동생과 함께 살았다. 늘 '동생이 먼저'였다. 그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 "가족이니까요."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의 1960년대, 8살 된 장남 종석씨는 가족들과 헤어졌다. 오빠 종석씨와 동생 종순씨에게 가족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헤어진 지 61년만에 이들은 재회했다. /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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