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텅 빈 놀이터

머니투데이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2024.09.19 02:05
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필자가 사는 아파트 안에는 아주 예쁜 놀이터가 있다. 지날 때마다 내 어렸을 적에도 이런 놀이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좋은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출생률 0.7명 시대의 풍경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근처 초등학교엔 아이들이 보이고 그 앞에 세워진 노란색 학원버스들엔 아이들이 앉아 있다. 어쩌면 텅 빈 놀이터는 저출생 문제에 더해 우리네 교육철학, 경제철학의 파산을 한마디로 요약한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지 않는 아이들이 만들 미래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몸도 움직이지 않고 친구들과 대화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창조를 해낼 수 있을까. 세상과 씨름하지 않고 과거의 지식을 정리해놓은 교과서만 외운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을까. 세상과 대화하는 중에 창조가 이뤄지고 우리의 기억은 그 창조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저장해둘 뿐인데 우리의 교육은 너무 기억 중심으로만 돌고 있다. 앞으론 기억된 단순 지식은 AI(인공지능)가 대체할 것이고 일자리 세계는 창조적 지식노동과 AI가 대체할 수 없는 비정형 육체노동을 중심으로 재편될 텐데 이대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이 숨어 있다. 많은 부모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고도 좋은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사물과 타인으로 이뤄져 있기에 우린 몸을 움직여 사물을 만나고 놀이와 대화로 타인을 만나며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하는 중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난다. 그런데도 책상에 앉아 하는 것만이 진짜 교육이고 체육, 미술, 음악을 포함해 몸과 감각을 움직여 하는 교육은 불필요한 것들이라고 믿는 부모가 많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체육은 못해요"라고 자랑한다. 과연 자랑할 일일까.


글로벌 경제의 맨 앞에 서 있는 선진경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고 후발경제는 그 창조해놓은 것을 익혀 뒤를 좇는다. 즉 선진경제는 지도 없는 곳을 개척해나가고 후발경제는 선진경제가 개척해놓은 길을 따라간다. 앞서간 자가 작성해놓은 지도에 의존해 좇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선진경제로 도약할 때가 됐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대부분 지도가 없는 곳이다. 미지의 길을 가기 위해선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고 대뇌뿐만 아니라 신경, 척수, 간뇌, 소뇌를 총동원해 우리 속에 숨겨진 상상력, 잠재력을 최대한 끄집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온몸을 쓰는 전인(全人)교육이 돼야 한다.

우린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창조적 '인재'보다 성실한 '사무원' 만들기에 중점을 맞춰왔다. 창조를 담당할 인재는 몸을 움직이고 소통하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사무원은 말없이 책상에 앉아 기록하고 서류를 만지는 교육으로 충분하다. 이젠 이러한 교육으론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 나라 전체가 지도를 꼼꼼히 읽는 성실한 사무원이 아닌 새 지도를 그리는 창조적 인재가 돼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그에 맞춰 교육도 창조성을 키우는 쪽으로 바뀔 때가 됐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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