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약이 아닌 병으로 성장한 바이오벤처

머니투데이 정기종 기자 | 2024.09.12 05:30

"바이오벤처가 약(藥)이 아니라 병(病)으로 크는 게 문제죠."

올 여름 만난 바이오기업 전문 벤처캐피탈(VC) 관계자의 탄식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듯해 좀 처럼 잊혀지질 않는다.

그가 탄식하는 도중에도 코로나 재유행 조짐에 관련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 중인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두 팬데믹 기간 존재감과 주가를 급격히 키운 뒤, 성과 없이 급락을 이어오던 기업들이다. 정작 국산 첫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성공한 기업들이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비슷한 뉴스에 테마주의 주가는 급등락한다.

벤처기업협회는 벤처기업을 '개인 또는 소수 창업인이 위험성은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독자적인 기반 위에서 사업화하려는 신생 중소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 벤처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위험부담 만큼 큰 기대수익의 바이오 업종은 시장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제도 지원과 높은 수요에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자본시장 편입에 성공했다. 우수한 기술력에도 부족한 자본을 갖춘 국산 바이오 기술을 육성하기 위한 훌륭한 시스템이라는데도 모두 공감했다.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적지 않다. 커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이유다.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 치료제 본연의 경쟁력이 아닌 질환(병)의 시장 규모와 화제성 만으로 청사진을 제시한 결과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정작 그들은 자금 조달과 기업가치 부풀리기에 특화된 기업 그늘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 역시 최근 신약 개발사 투자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 기술력 좋은 기업을 발굴해도 걱정부터 앞선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21년 VC 투자 비중 최상단을 차지하던 바이오 업종의 위상은 최근 찾아볼 수 없다.

주주들에 대한 부채의식 보단 가치 부풀리기에 혈안인 일부 기업들의 책임이 크다. 여전히 대다수가 개발 중인 치료제의 효능 보단 질병의 무서움과 시장 규모만 강조하려 든다.

안타깝지만 잊을만 하면 고개 드는 바이오 '옥석가리기' 필요성을 충족할 모범답안은 아직 없다. 다만 병 보단 약으로 크려는 기업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음지에서 혁신 신약 개발에 정진하는 '약 같은 기업'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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