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조 어치 당근' 내놨지만…"혈세 낭비" 시큰둥한 의사들, 왜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4.09.11 15:59
[청주=뉴시스] 안성수 기자 = 9일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충북대 의과대학 교수 비대위 채희복 위원장이 의대 증원 반대를 외치며 삭발하고 있다. 2024.9.9 hugahn@newsis.com /사진=안성수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기로 한 내년부터 2030년까지 총 5조원을 투입해 의학교육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의사집단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되레 이번 발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사들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셈이라는 불만 섞인 해석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5조원이라는 예산안 규모가 비현실적이고 너무 터무니없다"며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겠단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발표가 중장기적 계획인 만큼 이행 속도가 유동적일 수 있는 데다, 설사 속도를 내더라도 내년에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건물 '리모델링' 정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날(10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방안'을 발표했다. 한정된 의대 자원에서 의대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내년 1509명을, 2026학년도부터는 2000명씩 늘릴 경우 의학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관계부처 합동으로 투자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6년 동안 총 5조 원 이상을 의학교육 여건 개선에 투입하는데, 특히 의대 정원을 기존(3058명)보다 1509명을 늘리는 내년에는 교육부 6062억 원, 복지부 5579억 원 등 1조 1641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반영한 상태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2월까지 기존 의대 시설을 리모델링한다. 건물 신축 등 공사는 올해까지 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 신입생이 본과 1학년이 되는 2027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의대 교육에 필요한 실험·실습 기자재도 연차적으로 확충한다.

하지만 시설의 경우도 당분간 기존 시설을 활용하고, 새로 짓는 시설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신속히 추진하되 2027년까진 걸릴 것으로 정부는 관측한다. 당장 내년 2월부터 신입생 4567명이 입학하는데, 올해 휴학한 예과 1학년 3000여명이 내년에 다 돌아온다고 가정하면 최대 7700명이 부대껴야 한다. 그때까지 교육 환경이 물리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게 의사들의 지적이다.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최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2024.09.02. juyeong@newsis.com /사진=서주영

정부가 발표한 방안엔 '2025년 국립대 의대엔 시설·기자재 확충에 1508억원 지원하고, 사립대 의대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융자 1728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사립대 의대 상당수가 고민에 빠졌다는 게 의료계의 후문이다. 국립대엔 돈을 주는데, 사립대엔 '융자'를 지원하는 방식이어서, 정부로부터 자칫 큰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사립대 의대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면서 자금 1728억원을 융자해주겠다는 건데, 국고와 관련 없는 대출금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사후약방문식 정책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이번 정책이 여·야·의·정 협의체 출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본다. 최 대변인은 "협의체 결성 제안 이후 의협은 2025학년도를 포함해 모든 증원을 취소하고 현실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과학적 추계방식으로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계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고 정부와 대통령실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번처럼 무리한 정책을 쭉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과연 의료계와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건가"라며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없음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도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의대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30년까지 국고 5조원을 투자한다는데, 세금 5조원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황 회장은 "그렇게 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면피성 정책이다. 현 상황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에 불과할 뿐"이라며 "차라리 5조원을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사용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5년간 5조원을 쏟아붓는다는 '당근책'을 내놨지만, 휴학계를 내고 떠난 의대생들이 얼마나 복학할 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한 의대 1학년 휴학생 김모씨는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새 건물을 확장해 짓는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며 "2025학년도 증원 취소가 확정되지 않는 이상 현 상황(의대생 집단휴학)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직 의사 A씨는 "내년 4567명을 뽑아도 의대생이 되는 순간에 국민에게는 '악마'로 손가락질 당할 것이고, 다시 집단휴학계를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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