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리튬 공급과 재고가 크게 늘어난 반면 리튬을 원료로 만든 배터리의 수요는 정체된 때문이다. 독일 리서치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5년 3만8000톤이었던 글로벌 리튬 생산량은 지난해 18만톤으로 4.7배 늘었다. 급증한 리튬 공급 탓에 호주 등 일부 광산업체들이 감산에 나섰지만 중국이 공급을 줄이지 않은 데다 아프리카에서의 신규 공급까지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 리튬 가격은 최소 내년까진 더 내려간다는게 시장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리튬 가격의 추가 하락이 현실화하면 그동안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가 기대한 '프라이스 패리티'(Price parity)가 시작된다.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 가격과 내연기관차 가격이 같아져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다는게 업계 전망이었다. 이와 관련, 골드만삭스는 리튬 가격이 kg당 1만4000원 수준으로 내려가는 내년이면 배터리 가격이 kWh당 91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리튬의 추락으로 전기차 캐즘이 걷히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그동안 리튬 가격이 폭락하는 사이 업계 실적 추락의 골은 깊었다. 지난해 상반기 1조4421억원이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상반기 92.4% 급락한 1086억원을 기록했다. 양극재 업체 등 배터리 주요 소재기업의 실적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리튬 가격 하락이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 실적 둔화로 연결되는 구조는 이렇다. 우선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생산 기업이 배터리사에 양극재를 판매하는 가격은 판매 시점의 리튬 가격과 연동된다. 그런데 양극재사가 리튬을 매입하는 시점과 양극재를 판매하는 시점 간에는 2~3개월 시차가 있다. 지금처럼 리튬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최악이 상황에 직면한다. 리튬 가격 하락기에 양극재를 싸게 산 배터리사는 완성차 업계에 공급하는 최종 제품 가격 역시 낮게 책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완성차 업계의 사정까지 겹친다. 리튬과 양극재, 배터리가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질게 뻔한 상황에서 완성차사는 당연히 배터리 구매를 미루게 된다. 이는 다시 배터리 업계와 양극재 업계의 재고누적과 공장 가동률 둔화로 연결된다. 이것이 리튬 가격이 90% 폭락한 사이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서 진행된 악순환이다. 그리고 이 같은 악순환은 앞으로 리튬 가격이 추가로 떨어지면 또 다시 반복된다.
이에 배터리사는 조금이라도 싼 양극재 공급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특히 리튬을 직접 구매해야 하는 양극재 업계는 사실상 비용 절감 외엔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다. 완성차 업계는 리튬값 하락이 그칠때까지 배터리 재고를 줄이고 하이브리드카 판매 확대 등으로 대응한다. 업계 전반에선 결국 이 같은 비용절감 총력전이 펼쳐진 가운데 재무구조가 튼튼한 곳이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태성 배터리협회 부회장은 "리튬 가격 하락을 버티지 못한 기업이 나오면 결과적으로 국내 배터리 관련 공급망이 무너지게 된다"며 "양극재 등 공급망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책 금융이 필요하며 기술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해 주는 직접환급제 도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