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는 수사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페레그린'에 접속, 가해자와 연결고리가 될 만한 인물부터 선별하기로 했다. 이때 페레그린이 다른 경찰서에서 보낸 협조 요청 문서 속에서 한 인물의 별명과 전화번호를 찾아 베이커에게 추천했다. 이 단서를 토대로 베이커는 추가 피해자들을 확인했고, 용의자를 붙잡아 구속시켰다.
베이커는 "페레그린이 내가 찾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정보를 찾아다 줬다. (단서가 된) 협조 요청 문서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었겠느냐"면서 "페레그린을 수사의 출발점으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페레그린은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임원 출신 닉 눈이 2018년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눈은 시리아에서 미 국방부와 함께 악명 높은 이슬람 급진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IS)를 추적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이 기술을 경찰에 제공한다면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실리콘밸리에서 페레그린을 창업했다.
눈은 AI 수사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먼저 경찰관들이 어떻게 업무를 하는지, 업무의 어느 부분에서 AI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봤다. 이에 캘리포니아 산파블로 경찰서에서 18개월간 경찰과 함께 활동하면서 수사업무를 배웠다. 눈은 지난달 포브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찰) 커뮤니티의 신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상아탑에 앉아있기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찰서에서 눈이 눈여겨본 것은 수사관들이 수사자료를 모으는 방식이었다. 증거사진, 영상, 전과나 정신질환 이력, 차량과 총기 등록 내역,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 등 기초적인 자료들이 전부 다른 플랫폼에 저장돼 있어 수사관들이 일일이 검색해 모은 뒤 분석하고 있었다. 실시간범죄센터(RTCC)에서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데 자료를 모으는 데에만 수 시간이 걸리다보니 '실시간 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애틀란타 경찰청은 지난해 페레그린을 도입, 검찰과 함께 갱단·마약·총기 범죄 근절 프로젝트 '히트웨이브 2023'을 진행해 지역 범죄율을 21% 끌어내렸다고 발표했다. 페레그린을 통해 범죄별 우범지역과 시간대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방범 활동을 집중한 결과다. 이 경찰청에서 근무한 랄프 울포크는 "페레그린은 우리가 가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폭력범죄를 줄이는 데 필수"라고 했다.
페레그린은 긴급 상황 대처에도 유용하다. 뉴햄프셔 콘코드 경찰서 수사고나 조쉬 메델은 은행강도 용의자 체포 작전을 예로 들었다. 은행강도 용의자는 총기를 소지할 가능성이 높아 감시조와 체포조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해당 작전에서 페레그린은 감시조, 체포조의 위치와 주변에 주차된 차량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표시했고, 체포작전은 성공으로 끝났다. 무전과 구글지도에 의존했던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뉴멕시코 엘버커키 경찰서는 지난해 페레그린 도입, 체포영장 집행 건수를 월 평균 400건에서 600건으로 끌어올렸다. 페레그린을 통해 영장 집행 대상자의 신원과 위치 파악이 빨라진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인물의 죄목, 전과, 정신질환 이력, 총기 소지 여부가 현장 경찰관에게 일목요연하게 전달돼 위험을 예견하기 쉬워졌다.
페레그린은 미 전역 경찰서, 안전기관과 57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매출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기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고 한다. 눈은 올해 매출이 3000만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페레그린은 지난 4월 시리즈B 모금에서 프렌즈앤패밀리 캐피털, 피프스다운 캐피털 등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투자를 유치했다. 포스브에 따르면 기업가치는 3억6000만 달러로 산정됐다.
눈은 경찰 수사 보조를 넘어 범죄 근절을 목표로 한다. 눈은 페레그린의 도움으로 체포된 살인 용의자 2명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것만 갖고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범죄자 개인을 잡아넣었다고 해서 범죄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눈은 페레그린을 통해 경찰과 정부가 범죄의 경향과 발생 원인을 파악해 근본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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