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다 옛날 얘기" 사라지는 책방…사명감으로 버틴다[르포]

머니투데이 오석진 기자 | 2024.09.03 04:30

오전 10시에도 1~2곳만 영업뿐

2일 오전 9시45분쯤 책방 거리. 이날 일찍 가게 문을 연 A씨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아 매출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사진=오석진 기자

"예전엔 다들 일찍 열었죠."

# 2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청계천 헌책방거리. 'OO 서적', 'OO 서림' 등 간판은 줄지어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두 곳 뿐이었다. '헌책방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옷 가게가 헌책방보다 더 많았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한 50대 A씨는 "일찍 문을 열어도 사람이 안 온다"며 "다들 느긋하게 문을 연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9월에 매출이 몰렸다"며 "독서의 계절을 기다린 손님도 많았고 신학기라 중고생들 참고서가 많이 나가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 옛날이야기"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현재 헌책방거리에 생존한 책방은 16곳 뿐이다. 불과 20년전인 2000년대초엔 100곳이 넘는 책방이 자리했다고 한다. A씨는 "장사가 잘 안 되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것"이라며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지 않나. 책이 잘 팔릴 것 같나"라고 되물었다.

일찍 문을 연 A씨 가게 바깥에 쌓여있는 책더미에는 '총, 균, 쇠' '로마제국쇠망사' '사피엔스' 등 같이 유명한 책부터 '중학 영어사전' '수호지' '영웅문' 등 각종 사전과 무협지들도 보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누렇게 빛바랜 책들이 천장까지 빼곡했다. 그러나 책을 찾는 손님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사명감'으로 버티는 헌책방…2000년대 후반부터 매출 ↓


2일 오전 10시30분쯤 동대문구 헌책방거리에서 50년째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B씨네 가게.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게 밖에도 책이 빼곡히 나와있다/사진=오석진

경남 함안에서 상경해 50년째 책방을 운영 중인 B씨는 "책방이 잘 되다가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사람들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후반쯤 매출이 줄어드는 게 체감됐다"며 "세상이 워낙 바빠져서 그런가, 사람들이 책을 찾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B씨는 수익이 좋아서 가게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옛날엔 돈이 꽤 됐는데 요즘은 확실히 잘 안 팔린다"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것 무엇을 하겠나. 그냥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인근 헌책방을 하고 있는 C씨도 "나 말고 여기서 누가 책방을 하나 하는 생각이 있다"며 "지금까지 해왔으니 가게를 닫지 않는 것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장사가 점점 어려워진다"며 "사람들이 내 가게에 와서 찾던 책을 발견하고 보물을 본 것처럼 좋아할 때 제일 보람찼는데, 그랬던 순간이 언젠지 까마득하다"고 했다.



성인 10명 중 6명 "책 한권, 안 본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성인 종합독서율은 43.0%를 기록했다.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셈이다.

성인 종합독서율은 2013년 이후 매년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성인의 독서 장애 요인은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 등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성인들의 종합독서량은 3.9권으로 2년 전보다 0.6권이 줄었다.

장성민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요즘 책을 읽지 않는 '책맹'이 늘어나고 있다"며 "책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고, 짧은 유튜브 영상조차도 잘 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서는 인내심과 회복 탄력성을 길러주고 언어적인 사고 활동을 활발하게 해준다"며 "고전적인 독서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독서가 더 유연하게 변화해 현대인에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2일 오전 11시쯤 헌책방거리 모습/사진=오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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