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국회가 조금만 더 멀리 봤다면[기자수첩]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 2024.09.03 05:40

[the300]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말하기 대회를 하고 있다. 2024.08.30. hwang@newsis.com /사진=황준선

"그거 다른 상임위원회 소관 아닌가요?"

티몬·위메프 사태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무렵 의원들에게 국회 차원의 대응 계획을 묻자 상당수가 이같이 되묻곤 전화를 끊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듯 했다. 이후 보도가 쏟아지자 일부 의원은 태도를 바꿔 특정 상임위만의 일이 아니라며 본인이 속한 상임위 차원의 대응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의원이 주최한 간담·토론회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놓고도 정치권은 뒤늦게 팔을 걷어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주문한 지난달 27일이 기점이었다. 여당 소속 위원장이 이끄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딥페이크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예고했고 복수의 야당 의원들은 각각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사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오래 전에 시작됐고, 우리 주변에서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음란 사진에 연예인 얼굴을 합성하는 행태가 자행됐고 이후 일반인으로 피해 대상이 확대됐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성범죄 도구로 쓰인 합성영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적발된 딥페이크 텔레그램 대화방이 운영되기 시작한 2020년엔 K팝 아이돌을 상대로 한 딥페이크 음란물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당시 국회는 성범죄특례법을 개정해 '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영리 목적'을 중형의 기준으로 삼아 유희의 목적으로 피해자를 희롱한 대부분의 범죄자는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절반 이상의 범죄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020년은 이세돌 9단과 AI(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치러진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그해 미국 대선에선 딥페이크를 활용한 가짜뉴스가 파장을 일으켰고 당시에도 텔레그램은 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었다. '지인능욕'이란 용어를 쓰는 유희적 목적의 성범죄도 이미 사진합성 시절 나온 것들이었고 연예인에 이어 일반인 피해로 이어질 게 자명할 때였다.

4년 전 국회가 기왕 법을 고치는 김에 조금만 더 멀리 보고 처벌 대상을 넓혔다면 우리의 오늘이 조금은 달라져 있진 않았을까. 살짝 늦더라도 큰 흐름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입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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