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따르면 송·배전망의 주축인 송전선로는 2014년 3만2795C-㎞(서킷킬로미터)에서 지난해 3만5596C-㎞로 약 9%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발전설비가 9만3216㎿(메가와트)에서 14만4421㎿로 약 5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반도체공장·데이터센터의 2030년 전력 수요가 지난해 수요의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인 가운데 전력망만은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전력 인프라는 지방에 집중된 구조다. 수급 불일치가 심각하다. 특히 태양광이 몰린 호남 지역의 계통 불안은 전력당국의 골칫거리다. 호남 지역은 최근 지역 내 전력 수요보다 많은 잉여 전력이 발전되면서 출력제어도 빈번해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연결하는 전력망 확충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호남지역의 발전력을 첨단산업, 신도시 등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총 56조5000억원 규모의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세웠다. 2022년부터 2036년까지 15년간 송전선로 길이를 1.6배 늘리고 변전소는 지난해 900개에서 2036년 1228개로 1.4배 확대한다.
문제는 전력망 건설에 대한 주민 반대가 커지면서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해안-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사업은 66개월 이상 지연됐다. 북당진-신탕정 건설사업은 150개월, 신시흥-신송도 사업은 66개월 늦어졌다.
최근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 불허 결정도 전력망 적기 건설의 발목을 잡은 사례다. 동서울변전소는 경북 울진 한울원전 등 동해안 지역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의 2단계 접속지점이다. 하남시가 불허하면서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까지 기약 없이 지연될 위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전력망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책이 담긴 법이다.
전력망 건설 책임을 한전에서 정부로 전환하고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을 활용해 전력망을 건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가전력망위원회를 설치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인·허가 절차, 토지보상, 주민지원 사업 절차를 개선해 신속하게 전력망 확충을 할 수 있게 한다.
주요국들은 이미 전력망 적기 확충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독일은 2019년 '송전망 건설 촉진법'을 개정해 토지보상 수준을 높였다. 8주 이내에 보상 절차에 합의한 주민들에 대해 토지 보상금의 75%에 달하는 '간소화 보상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영국은 12주 이내, 네덜란드는 6주 이내에 합의해 준 주민들에게 각각 50%와 20%의 추가 보상금을 준다.
전력망 건설 기간 단축을 위해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특정 규모 이상의 전력망 구축 사업의 인허가 기한을 9∼12개월 이내로 제한한다. 미국은 국가 필수 송전망 프로젝트의 인허가가 1년 이상 지연될 경우 강제 승인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망이 제때 확충되지 못하면 발전 제약이 걸리게 되고 첨단산업 등에 전력 공급이 어려워진다"며 "신속한 전력망 확충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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