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방 비자금 의혹"…노태우 아들 재단에 입금된 147억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24.08.29 06:00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오른쪽)이 2023년 10월26일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2주기 추모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 연주가 끝난 뒤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혼소송에서 904억원의 내역이 적힌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공개해 비자금 논란을 일으킨 노 전 대통령 일가에서 또다른 자금 흐름이 포착됐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성했다가 추징된 2628억원과 별도로 부인 김옥숙 여사가 관리해온 드러나지 않은 돈이 있다는 '안방 비자금' 의혹이다.

28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원장(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김 여사 명의로 출연금 147억원이 입금됐다. 김 여사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현금 10억원, 2018년 예적금 12억원, 2020년 예적금 95억원, 2021년 예적금 20억원을 출연했다.

특히 아들 재헌씨가 원장으로 취임한 2020년 출연금 규모(95억원)가 두드러진다. 재헌씨는 이보다 한 해 전인 2019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하며 와병 중이었던 부친을 대신해 사죄 의사를 밝히면서 대외 활동을 본격화했다. 노 전 대통령 와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재헌씨가 대외 활동에 활발히 나서기 시작한 시점과 자금 출연 시점이 맞물린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2012년 설립된 한중문화센터에서 시작된 재단으로 동아시아국가 상호간 전략문화 협력과 청년교류를 주요 사업으로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활동 내용을 보면 북방정책 평가사업 등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책 기념 사업이 대부분인 사실상의 개인 재단이다. 법인결산공시에서 2021년 기준 총 사업비용 3억5000만원 중 공익목적 사업비로 분류한 2억6000여만원이 대부분 노 전 대통령 치적으로 평가받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과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지역 학생 장학금 등 사실상 '노태우 기념' 용도로 쓰였다.

동아시아문화센터 2022년 3월 공시 결산서류.

센터 자산도 대부분 김 여사 출연금으로 이뤄졌다. 2021년 기준 총자산가액 153억원 가운데 김씨의 출연금(147억원)이 96%에 달한다. 사무실 주소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건물이다. 이 건물은 노 전 대통령 별세 이후 부인인 김 여사가 상속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가 다섯차례에 걸쳐 출연한 거액의 자금 출처를 두고 의혹이 나온다. 평생 소득활동을 한 적이 없는 김 여사가 출처가 불분명한 거액, 다시 말해 집권 시절 조성해 은밀하게 관리해온 비자금을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김 여사가 영부인이던 시절 청와대에서 대기업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들과 수시로 면담하면서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전두환·노태우 정부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1995년에도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었던 고 강창성 의원은 국회에서 "김옥숙 여사 친·인척이 관리하고 있는 것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데 이 문제까지 이번 조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은 4500억원. 대법원은 1997년 4월 이 중 2708억원을 뇌물로 판단해 추징금 2628억원을 확정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2021년 10월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입관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조계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2013년 추징금을 완납하는 과정에서 돈이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장인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과 재산 환수 소송까지 벌였던 것을 되짚어보면 재단 출연금의 출처가 더 석연치 않다"며 "연간 사업비가 2억~3억원 수준인 재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한 것 자체가 출처가 불명확한 자금을 편법증여해 세탁하는 용도로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해당없음'이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도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900억원이 넘는 내용의 '김옥숙 메모'가 공개된 뒤 김 여사의 '안방 비자금' 의혹을 포함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재산 논란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도 잇따른다. 국세청은 상속세 등을 부과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김 여사가 만약 부정축재한 '안방 비자금'을 숨겨왔다가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한 것이라면 과세 여부 문제를 넘어 법적 정당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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