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직 안한 의사에 집단 조롱·망신주기…"배신자 취급" 울분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4.08.28 17:27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전공의나 의대생의 사직과 휴학은 집단행동이 아니고 개별적인 선택이라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조롱하는 명백한 집단행동이자 불법행위를 방조·장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100명가량의 복귀 전공의와 근무 중인 전임의, 학교에 돌아간 의대생 등의 개인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가 재등장했다는 보도(일하는 의사는 '내부의 적'?…"그만두고 회개해라" 블랙리스트 또 등장)가 나온 뒤, 해당 명단에 이름이 오른 대학병원 전임의 A씨는 28일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의사 커뮤니티 플랫폼인 '메디스테프'에 블랙리스트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3월이다. 당시 복귀 전공의 등을 '참의사'라 조롱하며 명단을 공유하자는 글이 올라왔고 다수의 댓글과 게시물 등 '제보'가 쏟아졌다. 메디스테프는 가입 시 의사면허 번호를 반드시 인증해야 하는 폐쇄형 커뮤니티다. 익명의 그늘에 숨은 의사들은 병원에 복귀한 동료들의 가족 관계, 여자 문제 등 개인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포하고 조리돌림했다.

A씨에 따르면 이후 7월 초, 텔레그램에 복귀 전공의들의 실명을 공개한 '감사한 의사-의대생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이름의 채팅방이 개설됐다고 한다. 제목에 '감사한'이란 표현은 의료 현장의 의사와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을 비꼬는 표현이다. 당시 참가자가 4000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복귀율이 10% 안팎인 전공의와 달리 전임의는 병원에서 일하는 비율이 일하지 않는 비율보다 더 높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순식간에 A씨를 포함해 의료 현장을 지키는 다수의 전임의를 "동료 등에 칼 꽂은" 배신자로 만들어버렸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안내문이 놓여 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A씨는 인간관계가 파탄나고 개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적 고통을 겪는다고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만 보고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의리도 없고 이기적'이라 여길 거란 생각이 든다"며 "정부는 현장에 남은 의사를 감사하다고 하지만, 동료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으면서는 일을 못 하겠다는 생각을 날마다 한다"고 한탄했다.


아카이브 사이트에 올라온 소위 '감사한 의사' 명단./사진=웹페이지 캡처

현재 전임의·전공의 블랙리스트는 원래 게시물을 삭제, 수정해도 기존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카이브 사이트를 통해 지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작성자는 경찰 추적을 의식한 듯 감사한 의사 명단을 '감(귤) 사(랑)한 의사'라며 '감귤'이라 칭한다. 매주 토요일을 '감귤 업데이트의 날'이라며 명단 추가를 예고하는 상황이다.

작성자는 가장 최근 올린 지난 24일 글에서 자신의 이메일 아이디를 공유하며 전공의 가을 턴(9월 추가모집) 지원자와 합격자 정보를 최우선순위로 제보해달라고 홍보했다. 현재 기존 '감사한 의사 명단'의 텔레그램 명단을 모두 포함해 1100여명에 달하는 복귀 전공의, 병원에서 일하는 전임의와 촉탁의,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 파견 군의관과 공보의의 이름·진료과·출신학교 학번 등의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나아가 일부 의사는 "술집에서 사람 팬 집행유예"라거나 "후배 여자들 만져대다가 이미지 나락" "모 병원 OO와 2년 차 OOO 선생님 결혼 축하드린다"라는 '신상털기식' 정보 공유까지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전임의에게 "리스트에서 빠질 기회를 드립니다"라며 사직 후 이를 인증하는 사진과 글을 남기면 명단에서 제외해주겠다며 사실상 '협박'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자는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자발적 사직 시 명단에서 제외해주겠다며 사실상 '협박'하기도 한다./사진=웹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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