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넓고 물건도 많은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대륙, 수 천 년 역사의 중국에서도 이 정도로 오래 파업을 한 황제는 단 한 명 뿐이다. 바로 명나라의 만력제, 묘호는 신종이다.
만력제는 47년의 재위기간(1563~1620년) 중 27년 이상을 놀고 먹었다. 어전회의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매일 전국에서 수천 건의 상소가 올라왔지만 만력제는 그 위에 엎어져 잤다고 한다. 이른바 '만력태정'이다.
신하들은 나무 하나 없는 자금성의 땡볕 아래 엎드려 황제에게 돌아오라고 읍소했다. 열사병에 쓰러지는 이가 속출하자 환관들이 물이라도 갖다주려 했으나 황제가 막았다. 나름대론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의 농땡이였던 셈이다.
만력제가 파업을 선언하면서 든 핑계는 건강이었다.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던 게 만력제는 고도비만에 등과 다리가 굽어 혼자선 걷지도 못했다.
명나라 최악의 암군으로 불리는 만력제지만,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재위 초기엔 꽤나 총명하단 소릴 들었다. 그러나 스승이었던 재상 장거정이 세상을 떠나자 국정은 신하들에 맡기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중국 역사상 가장 게을렀다는 만력제도 딱 하나 열심히 챙긴 게 있었으니 바로 '안보'였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을 구원한 건 만력제의 거의 유일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만력제가 정유재란 때 조선을 구하라며 원군 10만명을 보내면서 내린 조서다. 임진왜란 당시 원군의 약 2배다. 당대 전 세계에서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명나라와 오스만 투르크 뿐이었다.
물론 바다에서 왜군의 병참선을 끊은 이순신 장군의 공이 가장 컸지만, 육상에서 전면전을 벌이며 왜군을 압박한 명군이 없었다면 전쟁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왜군이 육상 진격으로 호남 곡창지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과연 일본이 철군을 선택했을까.
물론 만력제가 단순히 조선에 대한 의리 때문에 원군을 보낸 건 아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장악할 경우 북쪽 산해관 뿐 아니라 서해를 건너 명나라까지 쳐들어올 수 있는 만큼 조선에서 요격하는 게 유리하다는 게 만력제의 판단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만력제가 임진왜란 소식을 듣고도 태업을 이어갔다면 우리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핵을 가진 적국을 마주하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건 재래식 무기뿐이다. 누가 될지도 모르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유사시 은덕을 베풀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신세다.
유일한 길은 자체 핵무장인데, 다행히 최근 미 대선을 앞두고 희망의 빛이 엿보인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강에서 '한반도 비핵화'란 목표를 삭제했다.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허락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졌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리가 핵개발에 나설 경우 중국 등의 경제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 러시아 등이 참여한 NSG(핵공급국그룹)는 우라늄 수출을 중단할 것이다.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기료가 뛸 수밖에 없다.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만약 핵무장을 할 수만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진 말자. '밥'보단 '생명'이 먼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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