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졸라매도 78조 적자…'뉴노멀'이 된 긴축재정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 2024.08.28 05:08
연도별 예산 총지출 추이/그래픽=이지혜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 대비 3.2% 증가한 677조원 규모로 편성한다. 다만 법에서 정한 의무지출이 많아 재량지출 증가율은 0%대에 그쳤다. 초긴축 기조가 유지되는 셈이다.

정부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2025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올해(656조6000억원)보다 3.2% 증가한 677조4000억원이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2.9%)보단 높지만,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4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고령화와 인해 건강보험과 연금 지출을 중심으로 재정 운용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서 비효율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줄이고 꼭 써야 할 곳에 제대로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지출 중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은 각각 365조6000억원(54%), 311조8000억원(46%)이다. 의무지출은 기초연금처럼 법률에 따라 지출 의무가 발생하는 예산이다. 재량지출은 행정부가 재량권을 가지고 편성하는 예산이다.

내년 의무지출 증가율은 5.2%로 전체 평균을 웃돈다. 고령화를 반영하듯 기초연금 예산만 하더라도 1조6631억원 늘었다. 생계급여 등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9489억원 증가했다.

반면 재정지출 증가율은 0.8%에 그쳤다. 재정지출 증가율은 2023년(-2.0%)과 2017년(-0.1%), 2016년(0.5%) 다음으로 낮다.

2025년 예산 20대 핵심사업/그래픽=윤선정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가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거 우리의 강점이었던 재정건전성은 이제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위험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예고된 예산'이 상당했다. 올해 상반기 민생토론회에서 거론된 대학 국가장학금은 예정대로 대상자를 기존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확대한다. 소득인정액 1~8구간만 받던 구조에서 1~9구간까지 대상자가 늘어난다. 증액 예산은 5929억원이다.

윤석열정부 국정과제에 들어간 병장 월급 '200만원 시대'도 열린다. 올해 165만원(자산형성프로그램 포함)인 병장 월급은 내년 205만원으로 오른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의료개혁 예산은 5년 동안 국가재정 10조원과 건강보험 1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정부가 약자복지 예산으로 꼽는 건 노인일자리 110만개 공급,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 최대 150만원의 자활 성공금, 희망저축계좌의 정부 지원금 2배 확대, 연 최대 240만원의 저소득 대학생 주거장학금 신설 등이다.

소상공인에게는 한시적으로 배달·택배비 30만원을 지원한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은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인상한다. 올해 대폭 삭감된 R&D(연구개발) 예산은 2023년 29조3000억원보다 많은 29조7000억원 편성했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Bio), 반도체(Chips) 등 이른바 'ABC 첨단산업' 예산도 확충했다. 반도체 대규모 투자를 위해 4조3000억원 규모의 저리대출에 나서고, AI 혁신펀드를 1000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등의 내용이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표정책인 지역화폐와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이 0원으로 편성돼 국회에서 공방이 불가피하다. 긴축재정에 대한 입장차도 예상된다.




박근혜정부 시절 예산안을 편성할 때 유행했던 단어는 '슈퍼예산'이다. 당시 총지출 400조원을 처음 돌파하면서 확장적 예산이라는 자평이 이어졌다. 문재인정부에선 '초슈퍼예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총지출 증가율이 9.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더 이상 '슈퍼예산'이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현처럼 과거 우리의 강점이었던 재정건전성은 위험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정부는 긴축적 재정 운용을 선택했다. 긴축적인 재정 운용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았다.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3.2%.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4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총지출 증가율을 4.2%로 제시했는데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예산을 편성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정부 입장에선 확장적인 예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세입 예산(총수입)은 올해보다 6.5% 증가한 651조8000억원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5조6000억원 적자다. 쓸 돈이 거둬들일 돈보다 많은 구조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내년에 77조7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내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적자비율은 2.9%다.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3.0% 이내로 관리한다는 재정준칙을 강조해왔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3.6%다. 총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줄여도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8.3%로 올해보다 0.8%p(포인트) 올라간다.

중기 재정지출 계획/그래픽=이지혜
유병서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세수 문제로 재정수지가 왔다갔다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기조"라며 "여전히 빚 내서 사는 나라살림인데 줄여가지 않고 계속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찍은 예산이지만 경제활력의 마중물인 재정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정부가 전망한 내년 경상GDP 성장률(4.5%)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정부 재정의 역할)비중도 줄어든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총지출 증가율이 낮은 수준에 머문 가운데 재량지출 증가율은 0%대를 기록했다. 내년 재량지출 증가율은 0.8%로 전체 총지출 증가율보다 훨씬 낮다. 총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뉜다. 의무지출은 법에서 쓸 곳을 정한 예산이다. 재량지출은 말 그대로 행정부와 국회가 재량권을 가진 예산이다.

기재부는 내년 0%대 재량지출 증가율에도 대학 국가장학금과 병사 월급 등 각각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예산을 편성했다. 이 말은 다른 사업에서 대규모 감액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감액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출구조조정 규모는 24조원이다.

앞으로도 긴축적인 재정 운용은 이어질 전망이다. 기재부가 이날 발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이 기간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3.6%다. 그나마 의무지출이 △2025년 5.2% △2027년 7.0% △2027년 5.5% △5.0%로 높고, 재량지출은 이 기간에 각각 0.8%, 0.3%, 1.5%, 1.8%에 그친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예산의 총량으로 재정의 역할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볼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해야할 일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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