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많은 오페라가 만들어졌다. 작품성은 좋은데 투자를 못받아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작품도 있었다. 당시 이름없는 부자들이 일부 작품을 후원했다. 공연을 살리고 배우, 스태프의 생계도 지켰다. 연출자들은 이런 후원자가 고마운 나머지 "천사"라고 불렀다. 이처럼 100여년 전 탄생한 '엔젤'은 곧 헐리우드로 퍼졌다. 영화업계에도 비슷한 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엔젤'이 지금의 의미를 얻은 곳은 1960년대 실리콘밸리다. 당시 IT(정보통신) 산업이 성장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태어났다. 경제적 여유가 있던 개인들이 기술은 좋지만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을 알아보고 자금을 댔다. 실리콘밸리가 지금의 위상을 쌓아올린 기초다.
'천사'라고 해서 아무 기대 없이 돈을 쓰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엄연히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다. 단지 초기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알 수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애쉬튼 커처는 에어비앤비, 이제훈은 컬리 초기 투자자다. 최시원은 페이워치코리아, 겟차 등 핀테크·소셜 벤처 투자자로서 IR 대회 심사위원이 되기도 했다. 제시카 알바는 투자뿐 아니라 친환경 생활용품 스타트업 어니스트 컴퍼니를 창업,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비상장사)으로 키웠다.
어마어마한 유명인들만 엔젤투자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국내외엔 창업 후 경제적 성과를 냈거나, 창업경험이 없더라도 여유자금을 갖고 초기기업에 마중물을 대는 엔젤투자자가 적잖다. 대기업 은퇴자, 의사 등 각종 전문직이 그들이다. 엔젤투자자는 공인투자자(미국) 비즈니스엔젤(영국)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벤처캐피탈리스트(벤처투자자)에 빗대면 '엔젤리스트'가 될 것이다.
역사가들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스타트업에 빗대곤 한다. 이때 이사벨라 에스파냐 여왕의 전폭적 후원은 역사를 바꾼 엔젤투자로 평가된다. 한국엔젤투자협회에 따르면 이사벨라는 새 땅의 산출물 10%를 콜럼버스에게 떼어주고 콜럼버스의 후손들이 새 땅의 제독 자격을 물려받게 했다.
당시로서도 파격이지만 현대의 주식 지분율이나 배당 개념으로 봐도 흥미롭다. 이 과감한 '엔젤투자'의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바다. 오늘도 콜럼버스처럼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떠나는 창업가들이 적잖다. 그만큼 많은 엔젤리스트가 한국의 콜럼버스들에게 나침반과 등대가 되길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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