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단 '코미디 황제' 마지막 당부…"담배는 독약"[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 2024.08.27 06:00

편집자주 |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이 생전 보건복지부 금연 공익광고에 출연한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보건복지부TV' 영상

2002년 8월 27일. 전설적인 코미디언 이주일이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1980년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코미디 황제' 이주일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건 자신의 외모를 소재로 한 짧은 유행어였다. 혜성처럼 등장해 스타가 됐지만 이주일은 데뷔 후 바로 스타가 된 건 아니었다.

이주일은 1960년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격인 문선대를 통해 코미디를 시작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가수 하춘화와의 인연으로 여러 공연에서 보조 사회자로 활동했던 이주일은 1977년 하춘화와 공연을 하던 중 이리역 폭발 사고를 겪기도 했다. 당시 이주일은 후두부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고도 '내 머리를 밟고 내려오라'며 하춘화 구조를 도와 화제가 됐다.

하춘화의 공연 전담 사회자로 활동하던 이주일은 이후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PD에 발탁돼 1979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과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했다.



생방송 중 친 실수가 만든 스타…'이주일' 예명 이유는


코미디언 이주일. /사진=MBC

이주일은 1980년 1월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에서 대사 한마디 없이 서 있는 역할을 받았지만 생방송 중 대형 사고를 치면서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이주일은 심하게 긴장한 나머지 조연출의 '큐' 사인을 잘못 받아들여 무대로 나갔고,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타잔 역을 맡은 가수 윤수일과 부딪히게 됐다. 윤수일과 부딪혀 연못에 빠진 이주일은 멍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봤는데, 이 모습을 계획된 콩트로 받아들인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이를 계기로 다음 주 방송에도 의사 역으로 출연하게 된 이주일은 이때도 조연출의 사인을 오인했다. 환자 역을 맡은 코미디언 최용순의 눈을 확인하라는 조연출의 신호를 자신의 눈을 까뒤집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이주일이 눈을 까뒤집고는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황당하게도 이 실수들이 '스타' 이주일을 탄생시켰다. 이주일은 이 두 번의 방송으로 2주일 만에 스타가 됐다. 본명 '정주일'을 쓰던 그의 활동명이 '이주일'이 된 이유다.

이후로도 이주일은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콩나물 팍팍 무쳤냐" 등의 유행어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오리춤'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주일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연기는 '저질 코미디'로 낙인찍혀 1980년 9월 방송 출연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항간에는 이주일의 외모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주일은 '밤무대의 황제'로 불리며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자랑했다. 그는 1986년 다시 방송에 복귀, 전성기를 누렸다. 이주일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연예인 수입 랭킹 1, 2위에 올랐을 정도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금배지' 단 이주일, 정계 떠나며 "코미디 공부 잘하고 갑니다"


/사진=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방송 화면

이주일은 1988년 4월 MBC '웃으며 삽시다'에 출연해 "이제 13대 국회가 시작됐다. 13대 국회도 횡설수설을 즐겨하는 국회가 된다면 이 이주일도 14대 국회의원에 자신 있게 출마하겠다"는 말을 한 바 있는데, 이는 현실이 됐다.

이주일은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으로 정치계에 입문, 1992년 경기도 구리시의 14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국내 유일의 희극인 출신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이주일은 정계 입문 4년 만인 1996년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코미디라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며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는 말을 남기고 정치계를 떠났다.

이후 이주일은 SBS 토크쇼 '이주일 투나잇 쇼'를 통해 연예계로 복귀했으며, 1998년 100회 방송을 끝으로 연예계 은퇴를 알렸다.



외아들 잃은 뒤 '폐암' 선고…대국민 금연 캠페인 앞장


코미디언 이주일이 2002년 1월 국립암센터에서 폐암 투병을 하는 모습. /사진=MBC

2001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주일은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2002년 1월 보건복지부 금연 공익 광고에 출연하면서다.

이주일은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고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저도 하루 두 갑씩 피웠다. 이젠 정말 후회된다"며 금연을 권했다. "1년 전에만 끊었어도"라며 거친 기침을 쏟아낸 이주일은 "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당시 폐암 투병 중이었던 이주일의 금연 공익 광고는 국내 최초 '증언형' 금연 광고였다. 담배를 피운 과거를 후회하며 거친 기침을 내뱉는 그의 모습을 본 흡연자들 사이에는 '금연 신드롬'이 일었다.

이주일의 호소는 흡연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실제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01년까지만 해도 60.9%였던 남성 흡연율은 이 광고 4년 뒤인 2005년 51.7%로 9.2%p 감소했다.

이주일은 2001년 11월 폐암 진단 당시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았지만 그 이상을 살아냈다. 축구를 사랑했던 이주일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지켜본 지 2개월 후인 2002년 8월 27일 별세했다.

장례는 연예예술인장(3일장)으로 치러졌으며, 정부는 금연 운동에 적극 참여해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모란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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