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위기 속 한동훈 택한 보수..."기업 살리고·중산층 품어야 산다"

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정경훈 기자 | 2024.08.17 06:30

[the300] [MT리포트] 위기의 보수, 부활의 길은①

편집자주 | 보수의 위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세 차례 연속 패했다. 일각에선 "보수가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양 날개로 나는 새처럼 정치도 한쪽 진영이 무너지면 건강할 수 없다. 한동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보수의 재건을 위해 어떠한 핵심 가치를 새롭게 내세워야 할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의 새 지도부가 탄생했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소수 여당이다보니 정국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 번번이 거대 야당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3차례 연속 총선에서 패하면서 12년 동안 의회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게 오늘날 보수의 현실이다.

과거 보수가 대한민국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건 비단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수는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민주화 이후에도 우파가 수차례 집권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별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도 집권하다보니 무능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보수가 다시 국민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과감한 산업 정책 △중산층을 품는 외연 확장 △유능한 이미지를 위한 적극적 정책홍보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보수정당, 진보정당 지지율 추이/그래픽=윤선정
한국 보수정당이 과거와 비슷한 지위를 되찾기 위해선 다시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수는 변화에 인색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현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18세기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급진적 변화에는 반대했지만 필요할 때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보수정당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보수당도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19세기 중반 정권을 내준 영국 보수당은 20여년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보수당을 이끌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도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 개발과 입법에 힘썼다. 또 선거권을 확대하는 법률 제정을 주도하고 당의 지역 조직을 활성화시켰다. 그 결과 보수당은 엘리트 중심의 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 탈바꿈했고 다시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내세웠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논란은 있지만 성공적인 보수 변화의 사례로 꼽힌다. MAGA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유출을 막겠다는 약속이 포함돼 있었다. 기존 보수주의의 자유무역 원칙과 상충된 이 약속에 유권자들은 환호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나섰다.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경제의 트렌드가 됐다. 보수가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게 적응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MAGA 주요 공약/그래픽=이지혜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많은 정치권 전문가들은 예외 없이 보수의 지향점을 경제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 많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만큼 보수가 경제적으로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면 지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친기업'을 핵심 가치로 삼고,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는 AI(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부를 창출하고 창출한 부를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고용이 늘고 생산규모와 경제규모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 차관과 국무총리실장을 역임한 권태신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도 LG도 반도체나 배터리 등에 과감히 투자해 우리 경제가 여태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며 "과거 자유무역 덕에 잘 살 수 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AI, 로봇, 바이오 등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대해 과감히 세액을 공제해주고 온갖 지원을 다 해줘야 세계 시장에 나가 경쟁력있게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회복 속도가 느린 편이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반대하고 있을뿐 경제 정책에 있어 주도권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다"며 "법인세를 낮춰 기업 활동을 촉진시키고 기업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을 늘리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강하게 추진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할 수 있지만 이도저도 아니면 기대감과 지지가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보수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중산층을 강화하는 정책을 고민하고 연금개혁, 저출생 문제 등 각종 사회 현안을 적극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대중적 지지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보수는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 경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비정규직 보수를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올리는 등 사회 평균 임금을 높여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세금으로 재원을 만들어 노인, 저출생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수진영 스스로 자신들의 사상적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고, 그 결과로 나온 정책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삼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공정거래위원장, 박근혜 정부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보수의 정체성, 각종 사회적 사안에 대한 치열한 공부와 고민을 한 뒤 국민들에게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며 "그런 것에 소홀한 채 국민들이 이해하고 따라와주길 바랄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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