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의결권 미흡 실명공개" 압박...눈치보는 운용사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 2024.08.16 04:30
"의결권 행사가 미흡한 자산운용사는 실명을 공개하겠다."

금융감독원장의 한 마디에 자산운용사들은 당혹스럽다.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의결권 수탁자로서 기관투자자의 당연한 의무(스튜어드십 코드)지만 '제대로 된 행사'가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냐는 것이다.

특히 최근 두산그룹의 계열사 개편이 주주이익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운용사로 하여금 특정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당국은 명확하게 두산의 개편안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운용사들은 이미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두산의 안건에 찬성하면 불성실한 의결권 행사고 반대하면 제대로된 의결권 행사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두산은 현재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 내 두산로보틱스와 합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밥캣이나 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불합리한 개편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당국 역시 두산의 이런 결정이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기업 밸류업 정책에 반하는 행보로 판단한 듯 하다.


두산의 결정에 대해선 여러 비판들이 많지만 모든 기관의 이해관계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밸류업에 진심이라 해도 운용사들의 의결권까지 거론하는 것은 자칫 자본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인 독립적인 주주권 행사를 침해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선 스튜어드십 코드의 강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이후 기관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늘고 있지만 두산과 같은 사례는 언제나 반복된다. 자본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안건이라도 대부분은 원안대로 통과된다. 운용사들은 말 할 것도 없다. 최대주주에 과도하게 집중된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먼저 개선하지 않으면 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우선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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