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혁신'이었던 오픈마켓, 왜 '좀비'가 됐나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 2024.08.14 06:00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한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가 13일 채권단과 자구안을 두고 첫 논의에 나섰다. 2010년 설립된 지 14년만에 마주하게 된 파산의 기로다. 티메프 사태는 한국 오픈마켓 형태의 이커머스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수면 위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정산 주기와 판매대금 관리 문제다. 이커머스의 정산과 대금 보관, 사용 등에 관한 법 규정이 없다 보니 플랫폼마다 정산 주기가 다르고 정산방식도 다르다. 판매 후 정산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이번처럼 다른 사업에 유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거래 대금을 묶어놓는 '에스크로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법제화되진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오픈마켓 판매구조 자체에 있다. 오픈마켓이 활성화되던 무렵 이 시장을 좌우하는 것은 중간 판매상이었다. 오픈마켓은 기존에 제조업체-대리점-판매점을 거쳐 소비자 손에 도착하던 유통과정을 줄여줌으로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낮은 진입 장벽 덕(?)에 제조업체도 오픈마켓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가 가능해졌고 기존의 중간 판매상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오픈마켓에 진입이 가능해졌다. 사업구조도 단순해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시장 성장 속도보다 플랫폼 수와 판매자(셀러) 수가 더 빨리 늘어나면서 구조적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격 인하를 끌어낼 만한 구조적 혁신이 없는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오픈마켓 플랫폼은 쿠폰경쟁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로 인한 손실은 정산 주기와 판매대금 관리의 허점을 이용해 다른 판매자의 판매대금으로 앞선 판매자의 판매대금을 정산해주며 생명을 연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판매자들의 생명도 연장해줬다.

오픈마켓과 중간 판매상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판매자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제조사들은 자사몰을 강화하는 추세다. 상품 직매입을 통해 배송까지 책임지는 쿠팡의 존재도 이들에게 위협적이다. 혁신으로 불렸던 과거의 영업방식은 이제 리스크가 됐다. 혁신 없이 연명하는 오픈마켓은 언제든 제2의 티메프가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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